이미지 크게보기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인간 내면에 폭력을 발현하는 악마와 이를 제어하는 천사가 공존하며, 역사적으로 인류의 폭력성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할리우드 영화 ‘천사와 악마’(2009) 중 천사와 악마가 한 몸에 공존하는 캐릭터의 모습.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스티븐 핑커 /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으로 문을 연 21세기는 현재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우크라이나 내전, 중동 테러 등 각종 국지전과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이같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폭력이 아니더라도 갖가지 범죄들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한다. 최근에는 28사단 윤 일병 집단폭행 사망사건과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이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을까. 세상은 점점 더 흉악해지고, 인간의 폭력성은 끝없이 진화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편견이라고 말한다. 핑커 교수는 ‘세계 100대 사상가’(프로스펙트 매거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타임)으로 꼽히는 등 심리학·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최근 신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원제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대다수가 현대를 광기의 시대로 부르며 인간 내면의 악마성에 집중하는 가운데 우리 본성에 이런 악마를 끊임없이 조련하는 천사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또 우리가 폭력성이 증가한다고 인지하는 것도 그만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 인류 역사는 폭력 감소의 역사
핑커 교수는 전쟁, 약탈, 학대, 고문 등을 기록한 사료와 함께 고고학, 민족지학, 문학 작품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기원전 8000년부터 20세기에 이르는 폭력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인류 역사를 평화화과정·문명화과정·인도주의 혁명·긴 평화의 시기·새로운 평화의 시기·권리 혁명 등 6개 시기로 나눠 폭력 감소 현상을 보여준다. 평화화과정은 약 5000년 전부터 농업문명이 생겨난 시기로, 만성적 습격과 약탈이 줄면서 폭력적 사망 비율이 이전보다 5분의1로 감소했다. 중세 후기부터 20세기에 걸친 문명화과정은 봉건 영토들이 중앙 권력과 상업 하부 구조를 갖춘 큰 왕국으로 통합돼 유럽의 경우 살인율이 기존의 10분의1∼50분의1로 줄었다. 인도주의혁명 시기에는 17∼18세기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예제, 미신적 살해, 결투 등 사회적으로 용인된 폭력들이 철폐됐고,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50∼60년 동안의 기간을 뜻하는 긴 평화의 시기에는 강대국들이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서 역사학자들까지 ‘긴 평화’라 부른다. 이후 최근까지 새로운 평화의 시기와 권리 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내전, 독재정부의 억압, 테러 등 조직적 폭력이 줄고 소수집단, 여성, 아이를 대상으로 한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인류의 폭력성은 점차 감소했다.
◆ 인류의 폭력성을 결정하는 다섯 악마와 네 천사
폭력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핑커 교수는 인간의 본성을 단순히 성악설, 성선설 등 이분법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에 따르면 인간 내면에는 폭력 상황으로 몰아가는 5가지 악마(폭력 동기)가 존재한다. 목적을 위한 실용적 수단으로 동원된 폭력, 인종·종교·민족 간 패권 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 등이다. 패권 경쟁은 구체적인 이득이 걸려 있지 않음에도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폭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고, 복수심은 전 세계 살인의 10∼20%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런 악마는 감정 이입, 자기통제, 도덕감각, 이성 등 4가지 천사들(폭력 감소 동기)로 제압된다. 또한 4가지 천사의 활약은 다시 5개의 외생적 힘들에 의해 증폭된다. 리바이어던, 상업, 여성화, 세계주의,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등 인류 역사의 경향성과 궤를 같이하는 것들이다. 특히 상업은 더 많은 교역 상대와 더 멀리까지 상품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죽었을 때보다 살았을 때 효용이 커지기 때문에 폭력성을 줄인다는 흥미로운 설명이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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