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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출간된 책의 평균 면수는 300쪽입니다. 시대의 독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세평에 책 두께가 얇아졌을까 짐작해봤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2010년 286쪽, 2011년 278쪽, 2012년 291쪽으로 들쭉날쭉하지만 전체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종류별로는 역시, 역사책이 403쪽으로 가장 두꺼웠고, 기술과학 386쪽, 사회과학 384쪽, 순수과학 382쪽, 문학 278쪽 순이었습니다.

이런 통계를 찾아본 것은 이번 주 북리뷰에 소개된 책들의 ‘무서운’ 두께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적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무려 1408쪽이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848쪽, 교양 인문저자 김용규의 ‘생각의 시대’는 조금 작아 508쪽입니다. 핑커의 책은 올해 출간된 책 중 미술 도판, 백과사전류를 빼고, 가장 두꺼운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들은 모두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저작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요즘 100페이지 안팎의 소책자도 상당한 존재감이 있습니다. 몇 달 내 나온 책들 중에선 19세기말 대표적 아나키스트 P A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낮은산)이 떠오릅니다. 96쪽의 얇은 책은 크로포트킨이 1880년에 쓴 격문으로 134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독자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스페인의 대표적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젊은 시절 노트를 옮긴 ‘장식’(ARCHI TWINS)도 128쪽의 소책자입니다. 다소 거친 글 속에서 가우디의 고민과 이후 그의 건축을 이끌어갈 사고의 단초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문고판 시리즈가 있어 왔지만 얇은 소책자가 단행본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2011년, 출간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돌베개)가 아닐까 합니다. 레지스탕스 투사 출신인 에셀은 2009년 “젊은이들에겐 ‘분노할 의무’가 있다”는 즉흥연설을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편집자들이 감명을 받아 이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2011년 여름 프랑스에서 출간돼 200만 부를 돌파하며 ‘분노신드롬’을 일으킨 책은 한국에서도 상당한 반응을 얻었습니다. 원서는 원래 34쪽인데, 한국판은 그의 인터뷰를 넣어 88쪽으로 늘렸습니다. 이듬해엔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128쪽짜리 소책자 ‘피로사회’(문학과지성)가 독자들의 열띤 반응을 받았습니다.

이들 소책자들은 시의성 있는 강연, 연설, 논문 등을 가능한 한 빠르고, 가볍게 출간한 것으로 오랫동안 준비한 저작들과는 다른 생생한 직접적 호소가 있습니다. 편집자 스스로 ‘어마어마한 두께’로 표현한 책과 수첩보다 얇은 소책자를 번갈아보며 책의 가장 적절한 두께는 어느 정도일까라는 의미 없는 질문도 해봅니다. 가장 그 책다운 책이 되는 두께. 이 정도의 생각을 해볼 뿐입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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