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윈스턴 처칠부터 윌리엄, 해리 왕자까지 수학한 명문 ‘왕립(Royal)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는 ‘하마드왕 홀’이라는 이름의 체육관이 있다. 하마드는 바레인의 현재 국왕(하마드 빈 이사 알하리파)의 이름이다. 알하리파 국왕은 지난 2011년 자신의 ‘권위적인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인물로, 부상당한 시위 참가자를 치료하던 의사들마저 체포할 정도로 서슬 퍼런 압제 정치를 펼치고 있다. 샌드허스트 사관학교는 지난 2013년 알하리파 국왕으로부터 2300만 파운드(약 387억5000만 원)를 기부 받아 기존에 있던 시설을 재단장해 개장했다.

영국적 가치와 영국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샌드허스트 사관학교 졸업생 중에는 유독 중동 국가의 지도자들이 많다. 알하리파 국왕을 비롯해 현재 요르단의 국왕인 압둘라, 카타르 국왕인 셰이크 타밈, 오만의 국왕인 카부스 등이 샌드허스트 사관학교 출신이다. 셰이크 사드 전 쿠웨이트 국왕과 셰이크 하마드 전 카타르 국왕도 샌드허스트에서 수학했다. 2014년 5월 현재 샌드허스트의 외국인 재학생 72명 중 40% 이상이 중동 출신이다. 시리아 정부군의 최고위급 간부들 중에서도 샌드허스트에서 수학한 사람이 적지 않다. 심지어 “무기상이 되고 싶다면 무조건 샌드버그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제적 무기상 중에는 유난히 샌드버그 출신이 많은데다가 중동 출신 동창생들 간에 강력한 무기 거래 커넥션이 형성돼 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제인 키닌몬트 부소장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왕가와 군사 엘리트는 영국 정부의 중요한 정보원(source)”이라며 ‘서로 긴밀한 사이’라고 말했다. 키닌몬트 부소장에 따르면 런던의 가장 높은 빌딩 ‘더 샤드’는 카타르가 출자한 자금으로 건설됐고, 영국의 대다수 사회기반시설과 석유발전분야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후원을 받았다.

BBC는 “샌드허스트가 배출한 중동 리더들은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마리암 알 카와자 바레인 인권센터장은 “나중에 뒤돌아보면 영국이 중동 국가들을 얼마나 망쳐 놓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영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는 뒷전이고 돈과 무기를 더 많이 사고팔기를 원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영국이 자국의 정치·군사적 이익을 위해 중동 출신의 샌드허스트 졸업생들을 이용하고 있을 뿐 그들을 진정한 리더, 민주주의 가치의 수호자로 키워내는 것은 도외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동지역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의회민주주의와 인권’의 종주국을 자처해온 영국으로선 뼈아픈 지적이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