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문화부장

“당신은 문화체육부의 자랑.”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유진룡 전 문화부 장관을 칭찬했다. 지난 7월 18일, 유 전 장관이 면직된 다음날이었다. 청와대에 맞서 소신을 펴다가 강제 면직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할 때 청와대 권력과 밀착했다. 그런 이가 후배 장관을 정반대의 이유로 치켜세운 것이다. 정치권의 편 가르기가 낳은 소극(笑劇)이라고나 할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유 전 장관의 면직은 스스로 원한 것이었다. 후임이 정해진 시점에서 자리에 머물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것이 강제 면직으로 잘못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면직 배경은 와전됐으나, 그 때문에 그가 가끔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청와대와 편치 않은 관계였으나, 유 전 장관은 현 정권의 국정 기조인 ‘문화 융성’ 기치를 세우는 데 헌신했다. 체육·관광을 포함한 문화 분야의 역량을 전반적으로 키우고, 국민이 그것을 골고루 향유하는 것. 문화가 타 분야의 발전을 도와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되는 것. 그리하며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자산이 되는 것.

최근 취임한 김종덕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 융성 2기의 선봉장을 맡은 셈이다. 그가 이 과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문화계 안팎에서 우려하는 시각이 꽤 있다. 전임 장관들에 비해 약체라고 보는 탓이다. 장관 내정설이 나왔을 때, 그가 누군지 아는 이는 드물었다. 교수 출신이라는 것이 책상물림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러나 그는 미국 NBC 방송에서 영상 감독으로 활동하는 등 현장 경력을 꽤 쌓았다.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고, 디지털방송 솔루션업체를 창업한 이력도 있다. 말하자면, 문화 이론과 현장 감각을 겸비한 인물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일각의 ‘우려’에 고개를 가로젓지 못하겠다. 유 전 장관은 문화계 안팎의 신망을 받고도 정권 핵심과 밀착하지 않아 강제 면직설의 ‘굴욕’을 당했다. 그로 인해 문화부에 생긴 트라우마를 외부에서 입성한 새 장관이 극복할 수 있을까. 김 장관이 자신을 발탁해 준 정권에 엎드리기로 일관하며 ‘내부 군기 잡기’에 골몰한다면, 트라우마는 더 깊어질 것이다.

청와대가 영상전문가인 그를 장관에 올린 것은 국정홍보 강화 포석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국정홍보처 부활을 계속 검토해온 것에 비춰보면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분명히 유념해야 할 것은 문화부가 공보처 혹은 공보부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 조직에서 ‘문화’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968년이다. 그 전에는 공보처, 공보부만 있다가 문화공보부가 생겼다. 1989년엔 공보처와 분리된 문화부가 새로 만들어졌다. 이후 문화와 체육, 관광 등의 분야가 어울리면서 조직의 이름이 계속 바뀌었다. 주목되는 것은 1989년 이후로 ‘문화’의 앞뒤에 ‘공보’가 붙은 적은 없다는 것이다. 문화 국가의 꿈이 정부 조직 이름에 자연스럽게 스민 까닭이다.

국민과의 소통에서 국정 홍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정을 잘 운용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순리다. 문화부가 일정한 역할을 하더라도 그게 제1의 소임이 돼서는 안 된다. 김 장관 스스로 언급한 대로 문화 융성의 구체적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돼야 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선 구호나 다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안으로는 갈등이 극심한 문화 현장의 이해관계를 통섭하는 포옹력, 밖으로는 우리 고유의 가치가 담긴 새로운 한류를 창출하는 창조력이 필요하다. 경제 회복이 최대 과제인 시점에서 문화 재정을 확보해내는 정치력도 구사해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해내야 한다. 결실이 거저 얻어지겠는가.

청와대는 인사 개입 등의 간섭보다는 자율성을 주고, 힘을 실어야 한다. 문화 장관의 표상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가 혁신 성과를 이룬 것은, 드골 정권이 믿고 맡긴 덕분이었다.

기억하자. 문화 융성은, 이 정권의 국정 기조를 넘어선, 우리 현대사의 오랜 꿈이라는 점을. 일찍이 해방 정국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소망한 이후로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서 빛으로 존재해왔던 꿈.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