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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시절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좀처럼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인생살이가 결코 만만하지 않고, 때로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성장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아프고 힘든 만큼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그러니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의 심리적 고통을 외면하고, 서로가 왜 아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하고 듣는 것을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의 상처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SBS 미니시리즈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음의 상처에 대한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PD의 처방전이다. 의붓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맞서 저항하다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열다섯 살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추리소설 작가 장재열(조인성)과 어린 시절 엄마의 불륜을 목격한 뒤로 사랑을 믿지 못하면서 관계기피증을 겪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지해수(공효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모두가 다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우리 시대 마음의 병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추리소설작가와 정신과 전문의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린 방송 토크쇼에서 악연으로 만난 장재열과 지해수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사이코드라마 같다. 의붓아버지 살인사건에 관련된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한강우(도경수)라는 소년의 환영에 갇혀 살아가던 장재열은 지해수와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한다.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작동시킨 그의 방어기제가 지해수에 의해 빗장이 풀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래된 연인의 간절한 바람에도 끝내 육체적 관계를 맺지 못할 정도로 관계기피증이 심각했던 지해수는 장재열의 정신적 외상을 대면하고 그를 끌어안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신적 외상의 강도가 극심한 장재열과 지해수의 관계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심리적 개연성을 담보하지 못한 사랑이 전면에 부각됨으로써 마음의 병이 뒷전으로 밀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정신과 전문의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병이 깊은 조동민(성동일)과 이영진(진경)이 이혼 이후에 서로를 이해한다는 상황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의붓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라고 위증하고 복역 중인 장재범(양익준)의 심리 변화와 이상행동이 전체 내용 전개에서 중요한 실마리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겉돌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이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이겠지만,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사랑만 한 특효약이 없다는 인식의 결과라면 아쉬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질병 유발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내려진 처방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적 진단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처방은 비과학적이라는 내용을 자막으로 처리한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는 특별히 자극적인 사건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상황 전개 속에 복잡 미묘한 인간 심리를 배치했던 노희경 작가의 장점보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특성이 도드라진 작품이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그러기 어려운 섹스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하는 방식은 낯설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선언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로 “괜찮아, 사랑이야”라고 말하는 노희경 작가의 처방전이 우리 사회의 질병을 치료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강하다.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시절, 애간장이 끊어지는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시청을 권하고 싶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