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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미 법제화… 시행 늦추면 신뢰 추락”
기업 “中·美·日도 않는데 왜 우리만 먼저…”

내년 1월 1일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겠다는 정부와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는 재계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정부는 관련법에 시행 일자가 명시돼 있고, 국제사회에도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계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면 최악의 경우 기업들의 부담액이 약 28조 원에 달한다며 시행 시기를 2020년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란 무엇이고, 도입했을 경우 예상 효과와 기업의 부담 등에 대해 알아본다.


1. 온실가스란, 배출권 거래제란

온실가스는 적외선 복사열을 흡수 또는 재방출해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대기 중에 있는 가스 형태의 물질이다. 여러 종류가 있으나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을 규정한 교토의정서에는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 아산화질소(N₂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슌등 6가지를 온실가스로 정했다. 우리나라의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및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적외선 복사열을 흡수하거나 재방출해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대기 중의 가스 상태의 물질”로 정의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란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총량을 정해주고, 한 기업이 다른 기업으로부터 온실가스 배출권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2. 도입 계기 및 추진현황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의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을 경우 초강력 태풍, 홍수, 혹한, 슈퍼 허리케인, 가뭄, 사막화, 생태계 파괴, 식량 감소, 수자원 고갈, 전염병 창궐 등으로 피해액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 등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8년 7월 열린 주요 7개국(G7) 확대 정상회의에서 중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하겠다고 약속한 뒤 2009년에 “오는 2020년 온실가스배출전망치(Business As Usual·BAU) 대비 30%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7월에는 국가 감축 목표 설정에 대한 후속 조치로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주관 하에 단계별·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수립됐다.


3. 어떤 효과가 있나

환경부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신흥 경제국 중에서는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오는 201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 절대량이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2007년에는 1억 원을 벌기 위해 배출했던 온실가스가 77.0t이었지만, 오는 2020년에는 42.4t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예정대로 시행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기후변화 대응의 모범 국가로 인식되면서 국가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4. 거래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의 첫 번째 단계는 정부가 기업, 공공기관 등에 배출권을 할당하는 것이다. 할당량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사면 된다. 다만 이럴 경우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지금도 법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은 시행되고 있다. 온실가스 목표관리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BAU 대비 30% 감축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사용이 가장 많은 산업체를 대상으로 매년 감축 목표를 지정, 관리하는 제도가 목표관리제다. 지난해 490개, 올해는 584개가 관리업체로 지정돼 있다. 이들 기업은 정해진 배출량을 넘으면 과태료를 부과 받는다. 정부는 오는 2015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소가 생기면 배출량 2만5000이산화탄소t(이하 t)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곳은 목표관리제로, 많은 곳은 배출권 거래제로 이원화해 온실가스 감축에 나설 예정이다.


5. 거래제 시행 중인 나라는

2005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등 총 38개국에서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고 있다. 38개국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양은 전세계 배출량의 66%다. 이 가운데 미국(캘리포니아와 동부 9개주), 일본(도쿄(東京)도 등 3개 지방자치단체), 캐나다(퀘벡주), 중국(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 7개성) 등 4개국은 지역 단위로 시행하고 있다. 중국은 2016년 이후 전국 단위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재계는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이 지역 단위에서만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도입 반대의 근거로 대기도 한다.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면 적용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뉴질랜드나 호주 등은 제조업이 아닌 낙농업 중심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6. 정부 설정 배출량과 기업수는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일단 지난 5월 발표된 정부 방안을 보면 1차 계획기간인 2015∼2017년 3년간 거래제 적용대상 기업에 배정되는 총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은 16억4300만t이다. 할당 대상은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업 기준 12만5000t, 사업장 기준 2만5000t 이상인 곳이다. 발전·에너지 등 전환(7억430만t), 철강·석유화학 등 산업(8억8870만t), 공공·폐기물(2780만t), 건물(1840만t), 수송(370만t) 등 5개 부문 23개 업종 560여 개 기업이 대상에 올랐다. 현재 수정 작업 중으로 조만간 할당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이후 대상기업 지정, 할당신청 접수, 업체별 배출권 할당 절차가 이뤄진다.


7. 재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재계는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과소 추정된 BAU에 근거한 과소 할당으로 기업들에 3년간 최대 28조 원가량의 추가부담을 지운다며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안이 현실 여건을 무시한 채 기업들에 과도한 감축 부담을 안겨 생산이나 고용을 어렵게 하는 등 산업경쟁력 저하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재계는 업종별로 배정된 이산화탄소 할당량과 업계 요구량의 차이를 2010년 EU 배출권의 평균가격인 2만1000원을 기준으로 해 금액으로 환산하면 산업계 전체적으로 6조 원가량의 추가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추정했다. 배출권이 부족한 상황에서 판매자가 없다고 가정해 과징금 상한선인 10만 원을 적용하면 추가부담액은 약 28조 원까지 늘어난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특히 정작 온실가스 배출 상위국인 중국(28.6%), 미국(15.1%), 일본(3.8%) 등은 시행하지 않고 있는데 배출 비중이 1.8%에 불과한 한국만 내년부터 시행하게 되면 산업경쟁력 훼손을 자초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비용이 세금은 아니지만 사실상 세금처럼 납부해야 하는 준조세 성격이 강한 점도 재계의 큰 불만으로 작용하고 있다.


8. 재계의 요구는

재계는 우선 산업계가 참여한 가운데 국가 BAU에 대해 재검증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 세계적인 학술정보 서비스 업체인 톰슨로이터 포인트카본은 지난해 2020년 BAU를 10억3000만t으로 추정, 지난 2009년의 환경부 추정치인 7억7600만t보다 32%나 높게 산정했다. 앞서 지난 2009년 BAU에 대한 과소추정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지난해 이에 대한 재검증을 수행했지만, 세부적인 산정 근거도 밝히지 않은 채 기존 BAU 유지 결정을 내려 재계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정부와 재계가 BAU에 대해 이처럼 날선 공방을 하는 이유는 BAU가 기업에 허용되는 온실가스 할당량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BAU가 낮을 경우 기업에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도 줄어들고, BAU가 높을 경우에는 기업에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도 늘어나게 된다. 재계는 또 온실가스 배출허용 총량과 할당량을 상향 조정하고 할당 대상에서 간접 배출을 제외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발전사의 전력 생산에 따른 직접 배출 외에 기업에서 구입해 사용하는 전기 등의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도 거래제 적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중 규제에 해당된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EU에서도 직접 배출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계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시행 시기 자체를 2020년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9. 정부, 내년 시행 강행 이유는

법에 내년 1월 1일 시행으로 확정돼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 거래제를 명시한 법은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로 1차 계획기간을 2015년 1월 1일∼2017년 12월 31일까지로 못 박고 있다. 정부는 법을 고쳐가며 연기하기에는 국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고 특히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를 감안할 때 늦추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또 선진국을 중심으로 배출권 거래제 시장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에 조기 도입이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목표관리제 같은 직접 규제보다 시장 기능을 활용하는 게 절반 이상 감축 효율이 높기 때문에 시행을 미룰수록 손해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10. 정부, 기업부담 경감 방안은

재계는 정부 추정치가 자신들이 산정한 전망치(17억7000만t)와 차이가 크다며 할당량을 늘려달라고 줄곧 주장했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할당량을 늘려주기로 최근 부처 간 합의를 마쳤고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이밖에 배출권이 모자라 가격이 급등할 경우에 대비해 거래가격 상한선을 설정하고 배출권 예비분을 늘리는 등 시장 안정화 조치 방안을 마련 중이고 전기사용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 등 간접배출 할당량 확대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시행시기도 당초 2013년에서 2015년으로 늦춰 법에 반영했고 1차 계획기간 동안 무상할당 비율도 97%에서 100%로 확대해주는 등 이미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EU 국가들은 유상할당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1차 기간 동안 전부 무상으로 할당한 뒤 단계적으로 유상 할당 비율을 높일 계획이다. 또 수출업종은 국가경쟁력을 감안해 무상할당을 유지할 방침이다.

조해동·박수진·최준영 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