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할리우드로 가 악당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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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할리우드로 가 잔인한 악당으로 변신했다. 영화 ‘명량’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을 진지하게 그려내 이 영화를 역대 흥행순위 1위로 이끈 배우 최민식이 자신의 첫 해외 진출작에서 벌레 죽이듯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하지만 그가 맡은 역할이 단선적인 악역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최민식은 추석 연휴에 맞춰 오는 9월 4일 개봉하는 ‘루시’에서 마약조직 보스 미스터 장을 연기했다. ‘레옹’, ‘제5원소’ 등을 연출한 세계적인 거장 뤼크 베송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거대한 마약조직에 납치돼 약물 운반책이 된 여인이 이 약물이 우연히 몸에 퍼지며 뇌 기능이 발달해 초능력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베송 감독 특유의 액션물로 알려졌지만 ‘화끈한 액션신을 가미한 SF영화’로 소개하는 게 적당하다. ‘인간은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설정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복합약물이 몸에 퍼진 루시(스칼릿 조핸슨)의 뇌기능이 점차 확대되며 지식과 신체기능이 발달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여기에 인류의 기원, 인간의 존재 목적 등 철학적인 내용을 녹여 넣었다.

프랑스인 감독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지만 최민식은 모든 대사를 한국어로 한다. 하지만 영어를 쓰는 조핸슨과 그의 연기 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에 대해 최민식은 20일 서울 용산 CGV에서 ‘루시’ 시사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가 연기를 통해 어떤 감정을 전달하면 조핸슨이 오롯이 잘 받아내는 걸 느꼈다”며 “말이 통하지 않지만, 연기하면서 교감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으며 이는 처음 경험해보는 짜릿함”이라고 설명했다.

루시가 ‘진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에서 최민식은 극을 풀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깊이 있는 내면 연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미스터 장은 루시를 납치했다 그가 초능력을 얻어 자신에게 복수하자 그를 쫓는 단순한 캐릭터다. 최민식은 “(이번 연기가)실망스러웠다. 적응해가는 단계였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 작품을 한다는 게 출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우리 작품을 하는 게 편하다”며 “하지만 좋은 창작자와 배우가 구성된다면, 또 한 번 해보고는 싶다”고 덧붙였다.

조핸슨, 최민식과 함께 모건 프리먼이 뇌과학자로 출연하는 이 영화는 지난 7월 25일 미국에서 먼저 개봉해 흥행 성공을 거뒀다. 4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이 영화는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1억7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흥행은 미지수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추석 연휴에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없을 뿐더러 명절에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즐기기에는 내용이 다소 어렵기 때문이다. 또 15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명량’을 본 상황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으로 기억된 최민식이 잔혹한 악당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올 수 있다.

김구철 기자 kckim@ 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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