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영수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3일 인천 연수구 조직위 사무실에서 이번 대회의 준비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당부하고 있다.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꼽는다면 김영수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7년여 준비를 거친 대회 개막일(9월 19일)이 바야흐로 한 달 안쪽으로 다가왔다.

지난 2007년 4월 제26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서 인천이 2014년 대회 유치에 성공한 뒤, 정권도 바뀌고, 시장(市長)도 바뀌면서 이래저래 대회 준비는 바람을 탔던 것도 사실이다. 대회의 ‘얼굴’인 조직위원장도 한 차례 교체됐고, 정권과 시장이 소속 정당을 달리하면서 예산 등 각종 지원이 원활했다고 볼 수 없었다. 우리가 앞서 치른 1986 서울 대회와 2002 부산 대회는 이런 문제 없이 정부의 지원을 순조롭게 받아 대회를 마쳤다. 인천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치른 대회를 포함해 17회째의 역대 대회 중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치러지는 첫 대회일지 모른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대규모 국제대회 유치의 전범이 될 수도 있어,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서 대회를 준비한 게 김 위원장이다.

인도 뉴델리에서 채화된 성화가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봉송을 거쳐 인천항에 도착한 지난 13일, 인천 연수구 조직위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전날 뉴델리에서 귀국하자마자 이날 강화도 참성단에서 채화한 성화와 ‘합화식(合火式)’을 갖는 등 그는 눈코 뜰 참이 없었다.

뉴델리 성화 채화는 아시안게임 역사상 처음이다. 의미가 클 뿐더러, 인천 대회의 성격을 말해주는 주요한 이벤트라는 느낌이 들었다.

“올림픽은 첫 개최 도시인 아테네에서 성화를 채화해 여러 나라를 봉송하면서 올림픽 정신도 새기고 분위기도 띄우지만, 아시안게임은 그게 없었죠. 이번에 OCA에 제안해, 첫 대회지인 인도 뉴델리에서 채화했어요. 원래 성화 봉송은 전 개최도시와 다음 개최도시를 거칠 계획이었는데, 전 개최지인 중국 광저우(廣州)가 시큰둥해 인천의 자매도시인 웨이하이에서 대신 봉송했고, 다음 개최지였던 베트남 하노이는 대회를 반납하는 바람에 못했어요. 어쨌든 뉴델리 채화와 봉송 절차는 아시안게임의 전통으로 자리잡을 겁니다.”

OCA가 인천의 계획을 반기며 채화 과정의 경비 75만 달러를 내놓았고, 웨이하이시도 기꺼이 자신들이 행사비를 댔다. 이제껏 개최도시들이 과도한 자기 홍보에만 주력했다면, 이번 채화행사는 대회의 전통을 세우면서 ‘아시아인이 함께하는’ 인천 대회란 인식을 심어줬을 것 같다. 김 위원장의 아이디어였다.

“카타르 도하나 중국 광저우 등 직전 대회들을 보면, 물량주의와 국가주의가 지나쳐서 다른 아시아 약소국가에 위화감을 넘어 위압감을 준 측면이 있어요. 솔직히 인천 대회는 그렇게 물량을 쏟을 여력도, 뜻도 없지만,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대회를 성공시켜 아시안게임의 새로운 모델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베트남이 차기 대회를 포기했지만 어느 나라든 인천 대회를 모델로 삼아 대회를 열 수 있다면 좋겠지요.”

인천 대회의 영문 슬로건인 ‘Diversity Shines Here’(다양성이 여기서 빛나다)와도 일맥상통한다. 한류(韓流)가 지나치게 한국적인 ‘무엇’보다 다양성을 품는 국제성으로 성공한 것처럼 인천 대회도 그런 방향이 좋아 보인다.

다양성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김 위원장만큼 한국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거쳐본 인물도 드물다. 검사로 출발해 사법, 행정, 국회, 문화, 체육계 등 발을 안디뎌 본 데가 없을 정도다. 이런 이력은 그가 조직을 지휘하는 스타일에서도 나오는 모양이다. 사무국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예산이나 서류를 다룰 땐 검사가 법조문 챙기듯 꼼꼼하고 엄격하다가도, 다른 업무에서는 직원들의 결정을 믿고 다소 설렁설렁할 만큼 부드럽다고 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를 거치며 지니게 됐을 열린 시각과 인맥이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아무래도 예산문제가 여의치 못했고, 위원장 자신이 세일즈맨이 되기도 했다.

“애초 짰던 예산보다 적지 않게 깎였고, 그 예산 중 상당 부분은 우리가 마케팅으로 벌어야 하는 부분이에요. 대회를 준비하다 보니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도 쉽지 않겠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어요. 정부도 짜여진 예산이 있으니 지원에 한계가 있는 게 이해가 갑니다. 대기업들도 자국에서 치르는 대회에서 국내 홍보를 하는 셈이니, 월드컵이나 올림픽만한 관심을 기대하긴 어렵죠. 그래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대한항공, 신한은행 등이 각기 1500만 달러 이상씩 메인스폰서로 참여해줬고, 그런 점에서 고맙게 생각하죠. 사실 대기업의 협찬이 없으면 거의 어렵죠.”

김 위원장은 직접 입장권을 팔러 다닌다. 그의 인맥이 주고객이다.

“개·폐막식에서 순수하게 표만 팔아 250억 원은 벌어야 돼요. 경기장 표까지 350억 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VIP 초청을 굉장히 억제하고 다 돈 내고 오시라고 하고 있어요. 내가 그동안 몸담았던 공기관에서부터, 참여해왔던 문화계, 광화문 문화포럼, 예술의전당 후원회 같은 모임들의 지인들을 초청해 후원금과 표를 부탁하고 있어요. 돈이 될 만한 그룹이나 지인들은 죄다 불렀어요. 두루 쌓아온 관계들이 도움이 됐지요.”

그는 문화계와 인연이 깊은 만큼, 대회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개막식에 대한 기대도 크다.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은 이전 대회 개막식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돈도 돈이지만 인력 동원이 쉬운 체제였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이도저도 아닌데다, 과거처럼 ‘봉사정신’이나 ‘애국심’에 기대기도 쉽지 않다.

“임권택, 장진 감독이 워낙 뛰어난 분들이니까. 그래도 여러 사정으로 개막식 출연을 꺼렸던 문화계 인사들한테는 직접 전화를 해서 끌어내기도 했어요. 싸이와 빅뱅, JYJ, 씨엔블루, 엑소 등 세계적인 한류 예능인들이 재능 기부 형식으로 총출연합니다. 개막식 연출안을 보면 한마디로 재미있습니다. 한류를 좋아하듯 아시아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내용입니다. 3시간여 동안 펼쳐질 텐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최대의 버라이어티쇼가 될 테니 꼭 찾아와서 보세요.”

개막식에 150억 원, 폐막식에는 100억 원 등 총 250억 원이 투입되지만 광저우나 도하 대회에 비교해 적은 비용이다.

인천 대회의 준비는 경기장 건설 등을 포함해 거의 95%가 완료된 상태다. 특히 최근 국민들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안전문제를 비롯해 선수나 외국 관람객을 위한 숙소, 교통 문제 등은 소홀히 할 수 없다. 물론 조직위 차원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문제는 더욱 철저히 하고 있어요. 국가정보원, 군, 경찰, 소방 등 범국가기관 간 업무 분담을 통해 조직위도 만반의 대책을 세웠습니다. 각 경기장마다 경찰 및 소방안전지휘본부(CP)와 연계해 최첨단 안전시설을 준비했습니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선수와 임원, 미디어 등의 숙박시설은 큰 문제가 없지만, 20만 명의 외국인을 포함해 총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관광객을 인천시가 모두 수용하기에는 어려워 수도권 숙박시설이 이용될 겁니다.”

아직 변수로 남아있는 게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참가 여부다. 선수단의 참가는 확실한 것 같고, 응원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의 돌출행동으로 과거 ‘남·남 갈등’이 빚어진 적도 있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교황 방문과 8·15를 맞아 우리 정부가 북쪽에 유화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으니 잘될 것으로 봅니다. 북한은 OCA를 통해 14개 종목 선수 150명을 포함해 총 352명이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응원단의 참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올 것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어요. 나는 그다지 우려하지 않습니다. 인천 대회를 통해 남북관계의 대화 국면이 만들어진다면, 그 또한 보람 있는 일이고요.”

공정한 대회로 아시아인의 마음에 남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젠 국제스포츠 행사도 지나친 국가주의에서 벗어나고, 엘리트 스포츠로 메달에 연연하는 모습에서 탈피할 때가 됐다고 봐요.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아시아 각국을 배려하는 모습과 함께 다원화되고 세계화된 응원문화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인천시에서 모집한 각국별 서포터스들이 해당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국적을 떠나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문화를 만들 것입니다. 또 승자가 아량을 베풀어 패자를 위로하는 세리머니를 하게끔 하는 등 성숙한 응원문화를 보여줄 것입니다. 또 공정한 판정을 바탕으로 개최국 어드밴티지가 없는 대회를 만들어 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할 거예요. 우리는 인천 대회의 이런 모습이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스포츠 축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엄주엽 체육부장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