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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력 14년 차에 접어든 배우 강예원(사진)이 자신에게 딱 맞는 ‘맞춤옷’을 입고 스크린에서 훨훨 날았다. 그의 철없어 보이는 생활형 연기가 큰 웃음을 자아내며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20일 개봉한 영화 ‘내 연애의 기억’(감독 이권)에서 강예원은 고등학생 시절 동네 ‘일진’을 시작으로 순수한 대학생, 능청스러운 군인, 연하남 로커, 바람둥이 영화감독, 속물 직장상사 등과 줄줄이 연애에서 실패한 후 택시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 현석(송새벽)과 알콩달콩 사랑에 빠지는 은진을 연기했다. 그는 연애에 목숨을 건 거칠고, 화끈한 은진 캐릭터를 특유의 솔직담백한 연기로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강예원은 19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보석’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옹알이’를 해왔다면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영화는 로맨틱코미디에 섬뜩한 스릴러를 가미한 독특한 구조로 전개된다. 93분의 러닝타임 중 절반 정도를 보통 로맨틱코미디로 풀어내며 관객을 실컷 웃기다 중반 이후 급격한 장르 전환을 통해 으스스한 공포감을 전한다. 이에 대해 강예원은 “두 가지 장르를 자연스럽게 혼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연기톤을 잡아줘야 했다”며 “자칫 분위기에 휩쓸리면 관객이 지루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영화가 스릴러로 전환된 후에도 전반부에 보여줬던 캐릭터의 맛은 그대로 살아 움직이며 관객은 몸은 공포감에 떨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는 30대에 들어선 백수 은진이 현석과의 사랑에 빠져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 그가 벌인 끔찍한 사건을 접한 후 위기에 빠지는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그려냈다. 동갑 배우 강예원과 송새벽의 찰떡 호흡에 박그리나(은진의 경찰 후배 소영 역), 김현준(은진의 해병대 출신 동생 은결 역) 등 조연들의 맛깔나는 연기가 더해져 유쾌한 반전극이 완성됐다.

강예원은 은진 캐릭터를 ‘만약에 나였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하는 의문으로 접근해갔다고 밝혔다. 그는 “기본틀이 잘 갖춰진 작품이라 연기하기 편했다”며 “촬영을 진행하며 은진에게 에너지를 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작품들은 훌륭한 선배와 동료 배우, 영화적 설정 등 기댈 곳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내 힘으로 이끌어야 했다”며 “한 인물을 훑어가며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덧붙였다.

강예원은 또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건 우울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14년 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몇 작품 못했다”며 “작품이 없는 공백기에는 많이 힘들다. 그럴 때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두 번의 개인전을 연 그의 미술작품에는 외로움이 묻어나기도 하고, 희망의 메시지가 담기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그림에 내 마음이 표현된다. 외로움이 표출되기도 하고 때론 희망을 느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새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지금 이 시점에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설렘’을 그릴 것 같다”고 답했다. 작품에 대한 만족감과 관객 반응에 대한 기대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100억 원대의 대작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극장가에서 대작의 10분의 1 정도의 적은 제작비로 만든 개성 있는 ‘작은 영화’가 내놓을 흥행성적이 기대된다.

글·사진=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