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앞.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인근 도로는 물론이고, 건너편 식당이나 카페들은 장사를 아예 접고 시민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오전 5시에 왔어요. 이미 도로 맨 앞줄이 차버려서 염치 불구하고 남의 영업집에서 몇 시간째 버텨요.” 일산에서 온 한 50대 주부는 새벽잠을 설쳤음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카페 창가에 앉은 게 영 아쉽기만 하다.

“휴가 받았어요. 내 평생 이런 날이 또 올까요.” 30대 남성 직장인이다. 교황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가 인상 깊다.

“혹시 교황 사진 찍은 거 있어요?” 필리핀에서 왔다는 한 여성이 서툰 한국어로 사진을 구한다. 손만 나온 게 있다고 하자 “그거라도 달라”고 한다.

한 고등학생은 “로마까지 가서 또 뵈어야겠다”고 했다.

이날 서울 하늘은 흐렸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하지만 자리를 뜨는 이는 없었다. 우산을 받쳐들고, 우비를 입고…. 궂은 날씨를 ‘간절함’으로 버텼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 투병 중으로 보이는 마스크 쓴 환자, 갓난아이를 안고 온 엄마,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노인 등. 두 손을 꼭 모으고 교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교황이 성당 맨 앞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했을 때, 성당 밖에서 영상으로 이를 본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

거리에서 연신 “2000원!”을 외치던 우비장수들마저 강론 때에는 조용하게 경청했고, 성체성사 후엔 “성체 주세요”라는 말로 개인적 신앙을 드러내는 이도 많았다. 미사 말미에는 ‘사회적 염원’을 담아 다같이 ‘우리의 소원’을 합창했다.

새삼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미사 직전 7대 종단 지도자들과 만난 교황은 “삶이라는 것은 길이다. 혼자서는 갈 수 없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종교의 벽을 뛰어넘자’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성당 주변을 가득 메운 각양각층의 사람들을 보며 함께 걷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상처, 꿈, 바람은 다르지만 ‘함께’ 울 수 있고, 이렇게 한자리에 ‘함께’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교황 신드롬은 방한 전부터 시작됐다. 그의 소탈함과 파격행보는 본래 유명했다. 방한 기간 중엔 무엇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느냐는 분석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가 떠났다. 황홀했던 여행이 끝나간다. 종착지는 ‘현실의 삶’이다. 이제 그 분석들은 냉철하게 우리 사회를 향해야 한다. 이웃의 상처에 울어 주고, 서로 다른 꿈을 지지해 주며, 궁극적으로 같은 소망을 품는 사회. 그건 반드시 교황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박동미 문화부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