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디폴트 이후 4800만 달러 국채 매입
2012년 액면가 기준 13억3000만 달러 청구
美법원 반환소송서 이겨… 아르헨 또 위기

지난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가 950억 달러(약 98조 원) 규모의 제1차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선언하기 전부터 미국계 투자회사 엘리엇 어소시에이트 산하의 NLM 등 ‘벌처펀드’들은 아르헨티나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실상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는 ‘예고된 사태’였다. 풍부한 농업 자원 등을 바탕으로 탄탄한 경제를 유지하던 아르헨티나는 1976년 군사정권이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을 추진하며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군부 정권은 성급하게 자본 및 수입자유화를 실시해 외채를 끌어들였고, 결국 1975년 78억 달러에 달하던 외채는 1983년 450억 달러로 6배 가량 늘었다.

외채 상환을 위해 다시 외채를 끌어들이는 악순환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천정부지로 올라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새로운 화폐도 개발해보고, 페소화와 달러 환율을 고정시켜보기도 했지만 결국 막대한 달러를 외부로 유출하는 사태만 키웠다. 외환보유액은 바닥이 나고 외채는 계속해서 늘어나자 결국 아르헨티나는 버티지 못하고 2001년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미 1996년 페루의 부실채권을 액면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사 비싼 값을 받은 ‘쾌거’를 거뒀던 엘리엇 어소시에이트는 옆나라인 아르헨티나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엘리엇 어소시에이트는 페루의 부실채권을 1140만 달러에 사들인 뒤 원금반환소송을 제기, 채권기관 중 유일하게 채무조정에 응하지 않고 페루 정부로부터 5800만 달러를 챙겼다.

처음부터 벌처펀드가 아르헨티나에 전면으로 나선 것은 아니다. 2001년 디폴트 선언 후 2003년 9월부터 아르헨티나는 부도채권을 두고 채권단과 75% 가량을 탕감한 새로운 가치의 국채를 발행해 주겠다며 협상에 나섰다. 당시 외신들은 “아르헨티나가 빚쟁이지만 ‘갑’의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5년 3월이 되자 채권단의 76%가 아르헨티나에서 제시하는 채무조정안에 합의하게 됐다.

벌처펀드는 이때부터 나서기 시작했다. 나머지 24%의 채권단에게 접근해 조용히 채권을 싼 가격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2008년 6월부터 엘리엇 어소시에이트 등 벌처펀드들은 헐값에 ‘부도 채권’인 아르헨티나 채권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결국 약 7% 정도의 채권을 매입할 수 있었다.

2010년 6월 나머지 채권단 중 16%가 채무조정에 추가 합의했지만 벌처펀드들은 애당초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버텼다. 2001년 이후 매해 6∼7% 가량 경제 성장률을 이룬 아르헨티나 경제를 볼모로 벌처펀드들은 2012년 2월 미국 법원에 원리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채권 매입에 쓴 돈은 4800만 달러였지만 액면가를 기준으로 한 청구금액은 13억3000만 달러에 달했다.

미국은 시장자유주의를 국가 가치로 내걸고 있는 만큼 채무자의 ‘소극적 자유’인 ‘내 재산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매우 중요시 여긴다. 지난 6월 결국 미 연방대법원은 아르헨티나의 상고를 기각, 13억3000만 달러를 전액 상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이 돈을 갚기 전까지 당초 30% 수준으로 조정했던 다른 채권자에 대한 채무도 갚지 못하도록 판결했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디폴트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AP통신에 따르면 씨티그룹, JP모건 등의 다국적 은행이 아르헨티나의 2차 디폴트를 가져온 채권 일부를 인수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으나 해당 은행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