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7·30 국회의원 재·보선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31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곡성읍 일대를 돌며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번엔 통합진보당도 찍었는데, 이정현 의원이 그보다야 낫겠제.”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서 영남 기반 정당인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정현 의원의 개인기 이외에도 전남 순천·곡성 지역민들의 지역주의 벽 허물기에 힘입은 바 크다. 지역 주민들은 이번 선거를 “이변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오랜 기간 쌓여온 민심의 결과였고, 좋은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색(黨色)이 아니라 사람과 그의 진정성을 보고 판단했다는 게 한결같은 반응들이었다.

재·보선이 끝난 하루 뒤인 31일 순천 연향동 동부상설시장에서 만난 이승종(50) 씨는 “지난번에 김선동 전 통진당 의원을 실컷 의원으로 만들어 놨더니 ‘최루탄 사건’으로 지역민들을 창피하게 했다”며 “그런 통진당도 찍어 봤는데 아무리 집권여당이 그보다 못하겠느냐”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다른 상인은 “그 어떤 후보들보다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면서 “누가 뭐라 해도 믿지 못하는 불신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 같았다”고 한 표 행사의 이유를 밝혔다.

새누리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텃밭으로만 보는 야당이 미워서 이 의원에게 투표했다는 이들도 많았다. 30년 순천 토박이라는 정철호(48) 씨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지역이 통진당에 넘어간 후에도 전혀 위기감을 갖고 지역을 챙기지 않았다”며 “선거 때 그냥 새정치연합 깃발만 들고 나오면 다시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만한 야당에 경종을 울려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공천과정에서 새정치연합의 서갑원 전 의원과 노관규 전 순천시장 사이에서 드러난 해묵은 갈등과 반목 등 새정치연합의 지역패권 의식도 유권자의 등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 의원을 찍었다는 택시기사 김모(46) 씨는 “못하는 사람을 바꾸는 게 민주주의 선거 아니냐”며 “통진당도 새정치연합도 일은 못하면서, 자리에만 욕심내는 것 같아 표로서 자른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민들은 새누리당 간판으로 호남에서 ‘3전4기’로 도전하면서도 홀로 선거전을 치른 이 의원의 진정성과 ‘예산폭탄’ 공약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전남 곡성군 곡성읍사무소 앞에서 만난 이모(32) 씨는 “호남 사람들도 당색에 좌우되기보다는 내 지역 경제 살려 주고, 내 일자리 만들어 주는 인물을 뽑으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번에 나타난 전국 최고 투표율도 이러한 민심의 흐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순천을 찾아 지원유세를 하면서 “이정현 후보가 순천에 예산폭탄을 준다는데 그거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제가 반대할 것”이라고 한 것이 오히려 지역 민심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하는 지역민들도 많았다.

이 의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지지 열기는 선거 후 더 치솟는 분위기다. 특히 이 의원의 고향으로 인구 3만 명의 곡성은 거의 축제 분위기다. 이날 이 의원의 선거캠프 해단식에 참석한 50대 남성은 “당선 후에도 쪼르르 서울로 안 달려가고, 고향 논두렁길을 자전거로 타고 다니면서 직접 당선 인사를 하고 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고 말했다. 순천·곡성 시내 곳곳에는 ‘順天報恩(순천보은), 하늘처럼 받들고 은혜를 갚겠습니다’라는 이 의원의 당선사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지역구도 타파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순천과 곡성 지역민들은 이번을 계기로 지역주의 벽 허물기가 영남 지역으로까지 이어지길 희망했다. 순천대 앞에서 만난 정모(24) 씨는 대구에서 2번이나 새정치연합 후보로 출마해서 아쉽게 패배한 김부겸 전 의원을 거론하며 “이제는 영남 지역에서도 인물과 공약이 좋으면 새정치연합 같은 야당 후보도 당선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천·곡성 = 현일훈 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