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군도’(위 사진) 속 조진웅과 ‘명량’에서 왜적장수 역을 맡은 조진웅.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 ‘명량-회오리 바다’(감독 김한민), ‘해적-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으로 이어지는 여름 극장가 ‘빅3’ 사극 대전은 배우들의 자존심 대결의 장이기도 하다.

하정우-강동원(군도)과 최민식-류승룡(명량), 김남길-손예진(해적)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짝을 이뤄 팽팽한 긴장의 끈을 바투 쥐고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한껏 달아오른 솥의 김을 빼는 부분이 있다.

여러 작품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 배우 때문이다. 얼굴깨나 알려진 배우들이 불과 한 주 차로 개봉되는 영화 속에서 색이 다른 캐릭터를 맡아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상반기 개봉된 영화 ‘끝까지 간다’를 통해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한 조진웅은 ‘군도’와 ‘명량’에 연이어 출연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개봉 5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 ‘군도’에서 탁월한 화술로 적의 경계심을 허물며 무리의 책사 역할을 하는 조진웅은 한 주 후 개봉되는 ‘명량’에서는 왜군 장수 와키자카를 연기했다.

조진웅은 “지난해에 고생하며 찍은 두 편의 영화가 올해 일주일 차를 두고 개봉한다. 곤혹스럽기보다는 행복하다”며 “두 영화 모두 분명 대한민국 국민들, 관객들에게 큰 힘이 될 만한 영화”라고 소개했지만 관객들은 이질감을 느낄 법하다. ‘군도’에서 조진웅과 힘을 합쳤던 배우 이경영은 스크린 밖에서는 ‘해적’에도 출연해 ‘명량’의 조진웅과 한판 대결을 펼쳐야 한다. ‘군도’와 ‘해적’ 속 이경영의 캐릭터는 완전히 반대 지점에 서 있다.

‘군도’에서는 현자와 같은 모습과 뛰어난 무술 실력을 동시에 갖추며 도둑 무리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땡추 역을 맡았다. 하지만 ‘해적’에서는 주인공을 위협하는 잔인무도한 해적선의 선장 소마로 분했다. 그는 이 역할을 위해 얼굴에 큰 타투를 그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해적’을 투자배급하는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는 영화에 출연하지만 전혀 다른 색을 보여준다. 이경영의 연기 내공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충무로의 대표적 개성파 배우인 김원해 역시 올여름 두 편의 영화에 얼굴을 비친다. ‘명량’에서는 이순신(최민식)에게 후퇴를 권하며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 장수를 연기하고 한 주 후 개봉되는 ‘해적’에서는 고래가 삼킨 옥새를 찾아나서는 산적단의 2인자 춘섭 역을 맡았다. ‘명량’을 본 관객들에게는 미운털이 박히겠지만 ‘해적’으로 김원해를 접한 관객들은 웃음을 선사하는 유쾌한 캐릭터로 기억할 법하다. 이외에도 영화 ‘해무’의 여주인공인 배우 한예리는 ‘군도’에 특별출연했다.

이렇듯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는 영화에 같은 배우가 다른 역할로 출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연이니까 괜찮다’ ‘개봉 시기가 우연히 겹쳤다’는 해명은 무책임하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검증된 배우만 쓰려는 제작진의 안일함과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려 노력하지 않는 제작진의 게으름이 합쳐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충무로의 한 중견 제작자는 “영화 ‘마더’와 ‘방자전’ 속 송새벽을 접했을 때의 반가움을 잊지 못한다. 이런 배우들을 발굴하기 위해 감독과 제작자들이 대학로로 가서 연극과 뮤지컬도 챙겨봐야 하는데 이런 수고를 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며 “결국은 안정된 연기력을 갖춘 배우를 써서 안전하게 가려다 보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군도’(위 사진)에서 스님으로 분한 이경영과 ‘해적’에서 해적선장 소마 역을 맡아 악역을 소화한 이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