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지난 5월 25일 수행원들과 헤어진 후 휴대전화 등 외부로 연락할 수단을 전혀 갖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엄격한 휴대전화 사용 통제는 도피 행각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됐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검찰은 유 전 회장과 측근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번호를 수시로 바꿔 5월 초 소환 통보 단계부터 애를 먹었다.

검찰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은 휴대전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핵심 인사들은 차명폰을 쓰면서 전화번호가 자주 바뀌었다”고 말했다.

도피 과정에서도 유 전 회장은 극소수인 수행원들조차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실제 25일 검거된 대균 씨와 수행원 박수경(여·34·구속) 씨는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를 사용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고, 유 전 회장 수행원 신모(여·33·구속기소) 씨도 도청방지 장치와 함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29일 검찰에 자수한 양회정(55) 씨도 유 전 회장과 같이 있을 당시 휴대전화를 꺼놓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휴대전화 사용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검찰과 경찰은 유 전 회장 등의 위치 파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검찰의 급습으로 신 씨가 체포되고 양 씨가 도주하자, 휴대전화가 없는 유 전 회장은 철저하게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도피를 도와주던 전남 순천 지역 구원파 신도들도 모두 체포된 상태였기 때문에 유 전 회장은 도피자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방황하다 최후를 맞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또 다른 수행원을 보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연락수단이 있었다면 유 전 회장이 저렇게 허무하게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조사된 걸로 봐서는 주도면밀하게 도피계획을 세웠지만, 정작 비상상황에 대해서는 대비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