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경제산업부 차장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교육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연수할 때 공영방송에 중계된 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의 말이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자녀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소득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개탄의 목소리였다. 교육은 미래의 소득인데, 현재의 소득이 미래의 소득까지 제약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실제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초등학생 성적을 살펴보면 부모의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의 영어와 수학 학년말시험(EOG) 통과 비율이 백인 학생들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도 급속도로 심해지고 있다. 소득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최근 한국 경제는 극심한 내수(소비) 침체에 빠져 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수출 주도 성장을 하면서 수출로 돈을 번 기업의 이익이 가계로 잘 흘러내리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자 기업, 가난한 가계’의 공식이 갈수록 심화하는 형국이다.

급기야 정부가 가계의 소득을 늘려주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국민의 세금(재정)으로 가계에 돈을 나눠주는 것이다. 실제로 ‘최경환 경제팀’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재정에서 임금의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소득 증대 세제, 배당소득 증대 세제 등을 신설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그러나 재정의 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큰 거 한 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올 5월까지 누적 세수진도율은 40.5%로 국세에서 8조5000억 원의 ‘펑크’가 났던 지난해보다도 0.5%포인트 낮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수가 당초 목표치보다 8조∼10조 원 덜 걷힐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 이유다. 정부가 내놓은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보수적인 추계를 따르더라도 2013∼2017년 동안 관리재정수지 적자액이 87조 원을 넘는다. 나라의 ‘곳간’이 비었는데, 가계소득을 지원할 여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지원한다면 결국 국가채무가 급증해 다음 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계와 정부에 여윳돈이 없다면 결국 돈 나올 ‘구멍’은 기업뿐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기업 사내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가칭)다. 기업의 이익이 가계의 소득으로 흘러가서 소비 확대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나치게 인위적인 방식으로 급하게 일을 추진하면 정책 혼선만 커지고 당초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 향후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에 맞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거나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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