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山東)성의 타이산(泰山)에는 ‘한국길(코리아 루트)’이 있습니다. 산둥성 여유국이 타이산을 등반하는 한국 등산객을 위해 따로 닦아놓은 등산로입니다. 중국의 다른 산들이 그렇듯 타이산의 등산로도 죄다 돌계단입니다. 산에 오르는 재미라고는 없는 길. 가파른 돌 계단을 숨이 턱에 닿아 오르다보면 등산이 아닌 고된 노역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산길에서의 돌 계단은 더 부담스럽습니다. 계단을 내려갈 때 무릎이나 발목에 전해지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자칫 발을 헛디뎠다가는 부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타이산의 한국길은 그래서 닦아졌습니다. 산둥성 여유국이 유독 계단 길을 싫어하는 한국 등산객들의 취향을 고려해 흙길과 경치 좋은 칼바위 능선의 암봉을 딛고 가는 등반 코스를 따로 만든 것입니다. 중국의 공무원과 한국의 한 산악회가 함께 수 차례에 걸친 답사 끝에 코스를 완성한 게 지난해 10월의 일입니다. 아직 개인 등반객들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있지만, 산악동호회의 단체등반팀이 올 때면 ‘한국길’은 활짝 열립니다.

타이산의 한국길에서 감탄스러웠던 건 그 길을 놓은 중국 공무원들의 유연한 사고였습니다. 중국은 이제 과거의 중국이 아닙니다. 우리로 치면 도립공원이나 국립공원쯤 되는 타이산 풍경구(風景區) 안에 특정 국가 관광객들의 취향을 고려해 등산 코스를 따로 낸다는 건 과거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적인 사고로 본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인 관광객 유치란 목적 하나만으로 ‘한국길’이 일사천리로 놓였습니다.

유연한 사고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규슈(九州)지역에는 ‘올레길’ 12개 코스가 있습니다. 제주의 올레길을 벤치마킹해 조성한 도보여행 코스인데, 제주의 ‘올레길’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대신 사단법인 제주올레에 매년 100만 엔(약 1000만 원)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일 수출품’이라며 올레길 일본 수출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사실 그들이‘올레길’의 이름까지 그대로 쓰는 이유는 바로 한국인 관광객 유치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도보여행 코스의 노하우와 브랜드를 우리가 일본으로 수출한 것이 맞지만, 찬찬히 보면 일본이 ‘올레길’이란 익숙한 브랜드를 한국인 관광객들을 유인해내는 도구로 활용해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유연성’은 어떨까요. 중국 산둥성처럼 우리 설악산이나 지리산, 북한산에 ‘중국길(차이나루트)’이나 ‘일본길(재팬루트)’을 놓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일본의 규슈 지역처럼 트레일 코스에 일본이나 중국의 걷기 코스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아직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해마다 늘고 있긴 합니다만, 언제까지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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