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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수/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제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중요한 행위자이자 6자회담의 당사국인 일본이 인도적 목적의 북한 선박 입항, 조총련의 대북 송금 제재 해제 등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대북 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북한은 이 틈을 더욱 키우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대북 제재에 대해 가장 미온적인 국가는 중국이었다. 등 떠밀리듯이 안보리결의안에 찬성하긴 하지만 실제 대북 제재 행사 여부는 의구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3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중국의 대북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침 새롭게 등장한 제5세대 중국 지도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요 2개국(G2)으로서의 국가 위상을 생각하면서 북한을 객관적으로 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중국 정부는 교통, 해관(세관), 금융 및 공안·변방부대 등 산하 부처·기관에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를 철저히 이행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같은 해 9월에는 중국 상무부와 공업정보화부 등이 핵무기 등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轉用)될 수 있는 군·민(軍民) 양용 기술 수십 건을 포함해 모두 236쪽에 이르는 대북 수출 금지 목록을 발표했다.

6자회담의 당사국인 러시아는 그동안 안보리 결의안 도출과 대북 제재에 비교적 적극적이었다. 지난해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민과 기관, 기업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물품 거래 금지 등 대북 제재 이행을 위한 법령을 발표했다. 이로써 6자회담 당사국들인 한·미·일은 물론 중·러까지 대북 제재에 비교적 빈틈 없는 공조를 과시해 왔다.

핵·경제 병진노선을 추구하면서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천명한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뚫을 필요가 있었다.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잠그자 북한의 모든 산업 활동이 거의 정지되는 상황도 타개할 필요가 있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가장 만만한 상대가 일본이었다.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는 일본이 한·중 양국으로부터 ‘왕따’당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도 국제사회로부터 왕따당하고 있고, 특히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왕따당하고 있는 나라들끼리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서로를 도와줄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북한과 일본은 일본인 납북자 특별조사와 대북 제재 조치의 해제를 맞바꾸기로 했고, 상황의 진전 정도에 따라 아베 신조 총리의 방북도 고려되고 있다.

일본의 일탈은 일본 한 나라에만 그치지 않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가 일거에 허물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베 총리의 폭주를 그나마 제어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7월 초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의 독단적인 결정과 미래의 행동에 대해 경고했다. 일본의 행동이 미국의 예상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양해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임을 천명해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이나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도록 동의를 해준 것은 아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일본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해서, 일본은 자국의 잘못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왕따시킨다고 해서, 홧김에 도박장을 찾아가서는 안 된다. 100% 지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8월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국제사회의 진정한 리더국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