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열린 남북 체육실무접촉은 북측의 일방적인 퇴장으로 어떤 합의도, 추후 일정도 잡지 못한 채 결렬됐다. 그러나 이는 북측의 일방적인 주장과 요구에 정부가 ‘오랜만에’ 원칙을 밝히고 협상에 임한 결과로 보인다. 국제관례와 규범을 무시한 채 무조건 “와주기만 하면 다 주겠다”는 식의 과거의 저자세에서 벗어난 당연한 대응이다.

이날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북측 대표단을 만난 남측 대표단은 기조발언에서 “북한 선수단 및 응원단의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방문을 환영한다. 방문 시 국제관례와 경기 규정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북측은 사상 최대 인원인 선수단 350명, 응원단 350명 파견에 선수단은 전세기를 통해, 응원단은 육로를 통해, 숙박은 만경봉92호를 인천항에 정박해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남측이 ‘국제관례에 따르겠다’는 입장과 함께 파견 인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불만을 보인 것이다. 이런 불만의 기저에는 “우리가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대범하게 ‘큰 규모’를 제안했는데 왜 남측은 기뻐하면서 무조건적인 환영의 뜻을 보이지 않고 따지려 드느냐”는 태도가 깔려 있다. 과거 정부에서 있었던 3차례의 응원단 파견 당시 남측이 무조건 지원을 했었는데 이 정부가 유난을 떠느냐는 의미도 내포돼 있었다. 18일 조선중앙통신이 접촉 결렬에 대해 남측의 ‘부당한 태도’ 때문이라고 책임을 뒤집어씌우면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대회 참가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이 같은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이용해 북한이 대화 공세에 나서는 한편 ‘이미지 공작’을 통해 남남갈등을 유도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모처럼 제대로 대응을 한 정부가 앞으로도 원칙을 갖고 대화를 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해나가길 바란다.

박세영 정치부기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