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민간학자들이 주도하고 정부 당국자가 참여하는 1.5트랙 성격의 회의체인 ‘한·일 정책대화’가 오는 15일 예정돼 있지만 정부 참여는 올해에도 불투명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막가파식 과거사 도발로 한·일 관계가 파행을 거듭하는 와중에 아무일 없었다는 듯 정부 당국자들이 얼굴을 마주 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외교부로서는 국민정서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번 정책대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단일 의제로 한 양국 당국회담과도 성격이 다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9일 일본을 겨냥해 거듭 비판의 날을 세운 것도 정부 기류를 드러낸다. 윤 장관은 이날 아산정책연구원과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가 공동주최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유럽의 신뢰안보 구축 경험’ 주제의 국제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독일은 (유럽 각국과의) 양자적인 역사 문제에 있어 화해를 했다는 것이 유럽통합에 큰 역할을 했는데 동북아에 큰 시사점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윤 장관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불신과 대립의 체계를 화해와 협력의 체계로 바꾸려는 노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 당국자도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한·일 상황을 거론하며 “참석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한·일 정책대화는 민간이 주도하고 조언을 하는 성격이 강한데 회의 사실 자체가 공개돼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언을 하려는 학자들의 얘기를 들으려면 익명성과 비공개가 전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초 이번 정책대화에는 정병원 외교부 동북아국 심의관과 가나수기(金杉)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을 대표로 15일 도쿄(東京)에서 각각 정부 관계자 3명과 민간 전문가 5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행사를 주도한 한 민간 전문가는 “전쟁 중에도 대화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지만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면서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객관적이고 허심탄회하게 조언을 하고 당국자들이 정책에 참고하게 하는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일 정책대화는 2000년대 중반부터 매년 실시돼 오고 있으며 주로 한·일 관계 전문가들과 양국의 과장급 당국자들이 참석해 왔다.

정부 당국자들의 참석이 불투명해진 것은 중단된 위안부 문제를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가 추진 중인 것과도 무관치 않다.

방승배·박세영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