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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 경희대 교수 · 국제정치학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4일 서울을 방문하는 동안 일본의 아베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지고 북한과 일본이 가까워지는 동북아의 질서 재편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만한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기조차 힘든 동북아 국제정세의 변화가 지금 우리 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북·일 관계의 급진전은 충격적인 면이 없지 않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전혀 진전되지 않는 가운데 일본이 관련 제재 조치를 완화하려는 것이나, 역사 문제와 집단 자위권 문제에서 매우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아베 정부와 북한이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 모두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 답은 결국 양국의 국내정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아베 정부는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집단 자위권 도입을 내각의 결정을 통해 헌법 해석을 바꾸는 방법으로 결행했다. 이에 따른 정치적 손상을 일본 국민의 관심이 큰 납북자 문제 해결에서 만회하려고 한다. 이에 비해 북한은 국제적 압박의 탈출구를 우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서 찾으려 한다. 물론 북·일 관계 개선에 따른 경제적 보상도 중요한 동기일 것이다.

동북아의 현 국면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먼저, 북·일 관계의 급진전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북핵(北核) 해결을 위한 한·미·일 3국 공조가 약해지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분위기 훼손이 우려된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는 한·중 관계의 진전이 한·미·일 공조를 깨는 변화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의 동북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면서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매우 못마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한·중 관계 발전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카드로서 한·미·일 공조를 지원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결국 이 문제는 한·미·일 공조의 목적에 대한 상이한 시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고, 일본과 미국은 중국 견제를 중시한다.

다음으로는, 북·일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조사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양국의 외무장관 회담과 아베 총리의 방북이 이뤄질 것이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북·일 국교 정상화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에는 큰 걸림돌들이 있다.

일본의 대북 접근이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미국과 국제사회의 많은 나라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일본 국내에서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북한으로서도 일본과의 관계개선만으로 국제사회의 압박을 벗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곧 인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북·일 관계 개선을 결국 미국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는 한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앉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중 관계 심화와 북·일 관계 개선이 모두 북한의 핵 문제를 푸는 데 지렛대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일본에 대해서 납북자 문제라는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북 접근은 지지하면서도 이것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이 진전되지 않는 한 한·중 관계의 심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해야 한다. 동북아 정세의 변화 추세를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외교 리더십이 매우 긴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