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세기 조선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미인도. 동아대박물관 소장

“옹녀가 영화 등 각종 매체에서 성욕의 화신처럼 묘사되지만, ‘변강쇠가’를 잘 보면 그저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던 하층민 여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활력이 매우 강했고 거기다 섹시하기까지 했죠. 아마 오늘날 태어났다면 남자들이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성이었을 겁니다.”

신간 ‘옛 여인에 빠지다’를 낸 조혜란(사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초승달 눈썹, 주홍색 입술, 실버들 같은 허리 등 옹녀에 대한 묘사를 보면 오늘날의 ‘팜므파탈’로 불릴 만하다”며 “고전소설에서는 이런 묘사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최근 이런 말들은 찬사에 가깝지 않냐”고 했다. 그는 옹녀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여성’이라고 표현했다.

‘변강쇠가’에서 옹녀와 결혼해 하룻밤을 지낸 남성들은 모두 원인을 모른 채 숨을 거둔다. 이 때문에 옹녀는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라는 욕을 들으며 마을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녀는 단지 단란한 가정을 맺고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이후 변강쇠를 만나지만 하필 그는 한량이었고, 일도 안 했다. 옹녀는 집을 꾸리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강구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하나 결국 변강쇠는 나무를 하러 갔다 장승을 패오는 바람에 하늘의 노여움을 사 숨을 거둔다.

“옹녀는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했다기보다, 살기 위해서 결혼을 했던 여인입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고, 더구나 예뻤죠. 지금이었다면 그녀의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옛 여인에 빠지다’는 옹녀를 비롯해 ‘춘향전’의 춘향, ‘구운몽’의 백능파, ‘옥루몽’의 강남홍, ‘삼한습유’의 마모 등 고전소설의 여성 캐릭터 15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당시의 여인상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허구적 인물들이기 때문에 여성의 내면에 감춰진 욕망과 환상도 드러낸다. 책은 15명의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설명하고, 이들이 현대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까지 논한다.

가령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인으로 묘사되는 ‘삼한습유’의 마모는 소설 속에서 끝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되지만, 오늘날에는 ‘아줌마 파워’를 제대로 보여줄 여성이다. “고전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이 현재의 여성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 여성들의 삶을 비춰볼 수 있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애잔함을 느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조 교수는 앞서 ‘옛 소설에 빠지다’를 통해 멀게만 느껴지는 고전소설을 독자들의 눈 앞에 가져다 주려 했다. 이번 신간 또한 고전소설을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쓰게 됐다. “독자들에게 ‘혹시 구운몽의 백능파를 아세요?’하고 말을 거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고전소설은 원본으로 읽기 어렵지만 현재의 언어로 재해석하면 정말 다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거든요. 그 재미를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고전소설을 전공한 그는 앞으로도 전통, 고전 그리고 현재가 만날 수 있는 책들을 쓸 계획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소설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 한 이야기도 판본에 따라 나뉘는 등 실제 그 수가 무궁무진합니다. 또 아직 알려 주고 싶은 인물이 너무 많습니다. 다양한 구상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독자들에게 다시 말을 걸 생각입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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