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하안송 기자 song@

입만 뻥긋대는 아이돌 가수가 MBC에서 퇴출된다. MBC ‘쇼 음악중심’의 박현석 CP(책임 프로듀서)는 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수로서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이들은 무대에 올리지 않겠다. 자신의 파트가 적어도 좋다. 무대에 오른 가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밝혔다.

박 CP가 말하는 ‘입만 뻥긋대는 아이돌’은 100% CD에 의존하는 립싱크 가수와는 의미가 다르다. 정확히 말해 반주와 목소리가 모두 녹음된 AR(all recorded) 못지않은 MR(music recorded)를 틀어놓고 실제 노래를 하는 양 입모양을 맞추는 아이돌을 뜻한다.

1990년대 립싱크 논란이 불거진 후 가요계에서 100% 립싱크하는 가수는 대부분 사라졌다. 대중의 귀도 예민해져 앨범 수록곡을 그대로 틀어놓은 것인지 직접 부르는 것인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요즘 연예기획사들은 라이브 버전으로 따로 녹음한 MR을 준비한다. 하지만 반주가 담겨야 하는 이 MR에는 미리 부른 노래도 상당 부분 포함된다. 박 CP는 “MR에 80∼90% 목소리를 입혀오는 이들이 있다. 이를 어찌 MR이라 할 수 있느냐”며 “어떤 아이돌 그룹은 마이크에 녹음된 부분을 다시 들어보니 노래를 하나도 부르지 않았더라. 이건 가수로서의 기본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CP가 100% 라이브 무대를 원하는 건 아니다.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 그룹 대부분이 퍼포먼스를 앞세우는 만큼 무대 위 퍼포먼스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라이브 무대를 요구하진 않는다. 하지만 라이브와 퍼포먼스를 겸비한 진정한 실력파 아이돌 그룹이 차별화되도록 하는 차원에서도 ‘무늬만 가수’의 무대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컴백한 체리필터의 라이브 무대는 박 CP가 이 같은 결심을 하게 만든 전환점이 됐다. 스케줄 상 체리필터는 오전 일찍 사전 녹화 무대를 꾸며야 했다. 이른 시각이었기 때문에 메인 보컬 조유진의 목소리는 다소 잠겨 있었다.

이 때문에 몇 차례 목을 가다듬은 후 사전 녹화를 마칠 수 있었다. 반면 가창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체리필터와 함께 출연한 몇몇 아이돌 가수들은 녹화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고 음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무대를 꾸몄다. AR에 버금가는 MR 덕분이다.

박 CP는 “아침 일찍 일어나 노래를 부르면 다소 목소리가 갈라지는 게 정상이다. 언제 어느 순간에 불러도 완벽한 가창력을 선보이도록 만드는 MR을 쓰는 아이돌 그룹이 과연 정상인가”되물으며 “어느 순간 비정상이 정상처럼 보이고, 정상이 비정상처럼 보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기계의 성능이 워낙 좋아 음치조차 가수로 만들고 있다. 이건 음악프로그램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MR에 입히는 노래의 허용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긴 어렵다. 박 CP는 “궁극적으로 50%, 즉 절반 이상은 라이브로 불러야 한다”고 목표치를 말했다. 그러면서 박 CP는 198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독일 출신 남성 듀오 밀리바닐리를 예로 들었다. 그들은 조각 같은 외모에 가창력까지 갖춰 빌보드 차트 정상을 밟으며 그래미어워드 신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찰리 쇼라는 가수가 불렀고 두 사람은 입만 뻥긋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수상 자격이 박탈되고 세계적인 망신을 샀다. 박 CP는 “이제 K팝은 세계가 듣는다.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해외 팬들의 평가 기준도 높아질 것이다. 그들이 K댄스가 아닌 K팝에 열광하는 것만큼 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소화할 가창력을 키우고 무대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접한 연예기획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실력파로 정평이 난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한 연예기획사는 “MBC의 결정을 반긴다. 아이돌 이전에 가수이기 때문에 가창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진정한 실력자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신인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또 다른 연예기획사는 “아직 신인이기 때문에 완벽한 라이브 무대를 소화하기는 다소 버겁다. 더 많은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난감해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