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측은 일본정부의 고노(河野)담화 검증 결과 발표로 인한 한·일 관계 악화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일본이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큰 틀은 유지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담화 수정이라는 마지노선은 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특정 국가를 편들기보다는 한·일 간 확전 방지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를 무대로 외교전과 여론전을 펼치는 모양새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갈등 기류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일본의 고노담화 훼손 기도가 미국 측이 단순히 우방국들을 놓고 중립적 시각에서 봐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설득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중인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은 24일 오후(한국시간 25일 오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윌리엄 번스 부장관과 만나 이번 검증 결과 발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우려를 전달했다. 조 차관은 특히 일본 정부가 외교 결례를 범하면서까지 고노담화가 한·일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것처럼 교묘하게 포장한 점과 사실관계를 호도한 부분을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미 측에 던지는 메시지는 ‘문제는 일본이다’로 요약된다. 일본이 미 측에 방위비 등 동북아에서의 안보 역할 부담을 지고 있다는 것을 무기로 선을 넘고 있는 행보에 대한 미 측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 차관은 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한·미 전략대화에서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 결과를 포함해 일본 정부의 과거사와 관련된 여러 문제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며 “한국 정부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얘기했다”고 전했다. 조 차관은 그러나 “대화의 내용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이에 대해 번스 부장관은 기존 국무부의 입장 표명대로 무라야마담화와 고노담화를 계승하는 것이 이웃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중요한 장(章)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일본이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부분에 주목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도 일본의 꼼수를 알지만 일본이 고노담화를 수정·폐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과 보고서에서 담화의 신빙성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