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식의 퇴행을 거듭 보여온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급기야 자국 정부의 공식 발표마저 뒤흔드는 행태까지 자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했던 ‘고노 담화’를 검증, 그 결과를 20일 의회(중의원 예산위원회)에 보고하는 형태로 공개한다. 일본 정부가 어떤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든, 공식적으로 검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고노 담화의 정신은 크게 훼손됐다. 아베 총리가 평화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집단적 자위권 및 무기수출 등 재무장과 군사 대국화를 추구하며, 야스쿠니 신사에 직접 참배하는 등 일관된 흐름에 비춰볼 때 더욱 그렇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은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었다. 그런데도 아베 정권은 21년 만에 진정성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한국 정부의 의견을 묻고 들었던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고노 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게 아닌 ‘협상의 결과’인 양 비치게 하는 꼼수까지 쓰고 있다. 더 가증스러운 일은, 그러면서도 담화 자체는 인정한다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다.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직접 관여한 사실은 없지만, 과거 정부의 발표이니 마지못해 인정은 하겠다는 의미다. 교묘한 궤변으로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국을 두 번 농락하고 있다. 담화를 폐기하고 싶은 본심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달 초 한국을 국빈방문할 예정이다. 일본의 이런 태도는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한국과 중국의 ‘역사 동맹’을 재촉할 뿐이다. 또 한·미·일 협력 체제에 심각한 장애를 조성, 동북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일본이 문명국인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일본은 스스로 외톨이를 자초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