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로버트 칼린이 지난 5월 하순 인터뷰에서 남북한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면서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통일 얘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 준비는 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통일을 정말 원한다면 북한이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상대라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

南北도 진짜 비밀연설로 착각… 국내언론 오보 소동도

로버트 칼린은 1947년 뉴욕에서 태어나 페어몬트 맨스 칼리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다. 1971년 미 중앙정보국(CIA)에 들어가 1974년부터 북한담당 분석관으로 일했고, 1989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INR)으로 옮겨 2002년까지 동북아 담당관으로 북한 연구를 했다.

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수석 정책자문관으로 2006년까지 일했고 요즘엔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40여 년간 한반도 업무를 해왔지만 한국어는 “약간 이해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중국어는 “아주 약간 하는 수준”이라면서 “과거엔 런민르바오(人民日報)도 읽었으나 이제 다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정보기관 애널리스트 출신으로서는 특이하게 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나고 필력도 남다른 인물이다. 돈 오버도퍼가 ‘두 개의 코리아’(The Two Koreas) 증보판을 준비하며 칼린에게 공저를 의뢰했을 정도다. 오버도퍼와 칼린 공저로 세상에 나온 ‘두 개의 코리아’ 제3증보판은 현재 도서출판 길산에서 막바지 번역작업이 진행 중이고 7월 말 또는 8월 초쯤 출간될 예정이다. ‘두 개의 코리아’ 초판이 김대중-클린턴 시대의 남북관계사에 집중했다면 제3증보판은 노무현-조지 W 부시 시대 남북관계사를 미국적 시각에서 정리한 게 최대 특징이다. 또한 탈냉전시대 중국과 러시아에서 새롭게 공개된 새로운 한반도 관련 사료들이 대폭 보강됐다.

그는 이미 한 편의 글로 남북한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다. 2006년 9월 강석주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의 연설투로 쓴 풍자글 ‘추락하는 토끼’(Wabbit in Free Fall)가 바로 그것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내가 신뢰하는 동료들과 재회하게 되어 좋습니다. 내가 이러한 모임에서 연설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릅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강석주가 평양에서 열린 재외공관장회의 때 진행한 비밀연설처럼 쓰여져 있다. 북·미협상사를 비판적으로 리뷰하는 내용이 핵심인 이 글의 중간 중간에는 실제 연설처럼 청중의 분위기까지 지문으로 쓰여져 있다. 그래서 더 진짜 연설 같은 착각을 줬던 게 사실이다. 당시 왜 그런 글을 썼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회고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가 내게 제안했던 아이디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유명인사가 말한 것과 같은 스타일로 풍자칼럼을 쓰는데 북한의 김정일에 대해서 그렇게 써보자고 했다. 나는 당시 김정일은 만나본 적이 없지만 강석주와는 대화도 하고 연설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더니 그의 글처럼 써보자고 제안해 쓴 것이다.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좀더 분명해 보인다고 생각해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레토릭을 활용해 글을 쓴 것이다.”

2006년 9월 14일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날, 브루킹스연구소의 북한세미나 때 발표된 이 글은 미 싱크탱크인 노틸러스연구소의 웹사이트에 올려진 뒤 논란이 확대됐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강석주의 진짜 비밀연설로 보도되는 등 소동이 있었고 당시 북한의 해외공관에서는 강석주의 비밀연설이 누설됐다고 판단해 긴장했다는 후문이다. 이 글이 대소동을 일으킨 뒤 그가 만나던 북한측 인사들은 “당신은 그런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화를 냈다”고 칼린은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