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클라우스는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골프채를 잡고 연습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널드 파머를 생각하면 잠이 안왔답니다. 자신의 성공은 파머와 같은 걸출한 선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라이벌’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라이벌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때론 경쟁심을 깨우는 채찍이 됩니다. 그동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도 애니카 소렌스탐-캐리 웹, 로레나 오초아-소렌스탐, 신지애-청야니, 박인비- 스테이시 루이스는 골프여제 자리를 놓고 다퉈온 라이벌입니다.

지난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롯데칸타타여자오픈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우승을 차지한 백규정은 19세의 유망주입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올해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벌써 2승을 거뒀습니다. ‘슈퍼루키’로 떠오른 백규정에게 라이벌이 있습니다. 동갑내기 ‘절친’이자 지난해 슈퍼루키였던 김효주입니다. 성공은 김효주가 먼저 했습니다. 김효주는 2012년 미국과 일본, 한국, 대만 등 프로대회를 석권했고, 지난해 프로 데뷔와 동시에 롯데그룹과 국내 여자 선수로는 최고대우로 스폰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김효주가 지난해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 백규정은 힘든 2부투어를 뛰며 와신상담했습니다. 둘은 초등학생 때부터 만났으니 ‘10년지기’입니다. 대회 때마다 한쪽이 웃을 때 한쪽은 울어야 했던 ‘애증’관계였습니다.

백규정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효주로 인해 여러번 자극을 받은 게 사실”이라며 속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중3 때 골프가 싫어 방황하며 성장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둘에게는 다른 점도 많습니다. 175㎝인 백규정이 167㎝인 김효주보다 체격 조건이 더 좋고, 김효주가 ‘연습벌레’라면 백규정은 멘털이 강한 ‘애어른’으로 불립니다. 가족들에게조차 본심을 잘 드러내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백규정은 자신의 별명을 ‘여전사’로 불러달라고 할 만큼 스타일이 공격적입니다. 샷 속도도 빠른 편이어서 성의없어 보인다는 얘기도 듣지만, 정작 본인은 판단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반박합니다. 간혹 기복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며 “김효주의 꾸준함이 부럽고 배우고 싶다”고도 말합니다.

나란히 10대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여자골프의 실력자로 떠오른 백규정과 김효주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무대 진출입니다. 둘 중 하나가 먼저 LPGA에 진출한다면 아마 남은 한 선수는 사촌이 땅 산 것처럼 배 아파질지 모릅니다. 두 선수가 내실을 다진 뒤 박인비와 루이스처럼 세계여자골프 ‘퀸’을 놓고 LPGA 무대에서 호령할 때가 빨리 오길 기대해 봅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