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부터 실시되는 새 도서정가제의 근본 취지는 책을 ‘가격경쟁’에서 ‘가치경쟁’이라는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책 시장은 온라인 서점 중심의 반값할인·폭탄세일에 휘둘렸고, 출판사들도 어쩔 수 없이 제 살 깎아먹기식 할인 대열에 가담하면서 시대 변화에 따라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출판 스스로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온라인 서점의 대규모 할인과 경쟁할 수 없는 동네 서점은 고사했고, 할인폭을 감당할 수 없는 소규모 출판사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할인 프로모션을 벌이는 책들이 많이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독자의 관심을 받으며 판매량이 더욱 상승하는 기묘한 악순환이 되풀이돼왔다.

신간과 구간을 가리지 않고, 모든 도서의 할인율이 15%를 넘지 못하는 새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으로 이 같은 가격경쟁 관행을 깨는 계기는 마련됐지만, 출판, 독자, 서점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지 여부는 출판계를 중심으로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잘 대응해 넘어서느냐에 달렸다. 이에 출판계에서는 변칙 할인 등을 막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개정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담기 위해 의견을 수렴, 곧 정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 쟁점들을 정리했다.

◆ 법 개정으로 무엇이 바뀌었나 = 11월 발효될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모든 도서는 정가의 15% 내에서만 할인이 가능하다. 출간한 지 18개월 이내의 도서, 이른바 신간에 한해 정가의 19%까지 할인이 가능했던 현행 도서정가제에 비해 할인율이 4%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할인율 인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용 대상의 확대다. 현행 도서정가제의 예외로 인정됐던 ‘18개월이 지난 구간’, 실용도서, 초등 학습참고서, 도서관 구입 도서도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서 종류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최대 15% 할인’ 적용을 받게 됐다. 이에 이제까지 구간을 대상으로 횡행했던 반값 할인, 인문·사회 도서를 실용도서로 바꿔 할인하는 편법 할인이 불가능해졌다.

◆ 중고 서점을 통한 변칙 할인, 어떻게 막나 = 하지만 출판계에서는 새로운 도서정가제법이 실시돼도 틈새를 파고든 편법 할인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중에서 출판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고서점을 통한 편법 할인이다. ‘최종소비자에게 판매되었던 간행물로서 다시 판매하는 중고 간행물’은 도서정가제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출판사 혹은 판매상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품 도서를 중고 도서로 속여 중고 서점을 통해 할인 판매를 할 수 있다. 이에 출판계에서는 시행령 혹은 시행규칙에 이에 대한 방지책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의 요구가 있을 경우, ‘판매하는 중고 도서가 소비자에게 판매됐던 책’이라는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중고 도서 판매자에게 부여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우리 책 시장도 일본처럼 정품 시장과 헌책 시장이 각각 제자리를 찾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예외조항이 너무 많지 않나 =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대상에 대한 엄격한 규정도 요구된다. 현행 도서정가제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간행물에 대해 ‘도서정가제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예외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현 시행령에 따르면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중고 서적과 함께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그 밖에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의 도서실·자료실에 판매하는 간행물 ▲군부대, 교도소, 그 밖에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보호시설에 판매하는 간행물 ▲외국에서 발행된 간행물 등이 예외로 인정된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법 개정 취지가 민간뿐 아니라 공공부문까지 정가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같은 포괄적 규정은 조정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사재기 위반의 경우 2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반면, 정가제 위반의 경우 과태료가 최고 300만 원에 불과해 이에 대한 현실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책값은 어떻게 되나 = 일부에서는 새 도서정가제로 할인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책값이 올라 소비자의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는 책값이 오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책값이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는 게 전체적인 전망이다.

즉 이제까지 출판사들이 최소 19%, 최대 반값 할인을 예상해 가격을 책정했기 때문에 도서 가격에는 어느 정도 거품이 끼어있는 실정이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될 경우 이 거품이 빠지면서 장기적으로는 책값이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또 새 도서정가제는 18개월이 지난 도서의 경우 재정가(再定價)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격 인하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새 도서정가제 실시 초기에는 단기적으로 책값이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출판인은 “어제까지 반값 할인 했던 책이, 새 도서정가제 실시로 정가를 받을 경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격 부담이 크다고 느낄 것”이라며 “기존에 반값 할인을 했던 책들의 경우, 출판사들이 스스로 정가를 낮추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동네 서점은 부활할까 = 새 도서정가제로 동네 서점 부활을 위한 동력은 마련됐다. 동네 서점 공급가와 인터넷 서점 공급가가 비슷해지면서, 동네 서점 경쟁력의 발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박대춘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은 “출판생태계 정상화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독자의 신뢰를 되찾는 정직한 가격 찾기에 힘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동네 서점은 지난 2011년 말 2577곳에서 지난해 말 2331곳으로 10% 줄었다. 하지만 동네 서점 부활이 가격경쟁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이에 서점계는 도서관의 장서 구입시, 일정 부분을 그 지역 서점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후속 조치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서관 장서가 새로 도서정가제 대상이 되면서, 그러지 않아도 규모가 작은 공공도서관의 장서 구입 규모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이번 기회에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되면서도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온 도서관 장서 구입비 인상 등의 문제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