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천영우/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북한이 한 달이 넘도록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핵무기 고도화라는 군사적 목적 이상의 정치적 노림수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Pu)과 고농축우라늄(HEU)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핵 억지력’의 신뢰성을 높이려면 핵실험보다는 ‘인공위성’으로 위장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무기 운반 수단을 개발하는 것이 유리하다. 핵실험은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를 위해 필요하지만 매번 실전 배치할 핵무기가 하나씩 줄어드는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 시점에 핵실험 카드로 노리는 것은 미국과의 직접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압박하는 동시에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현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자 정치적 도박일 가능성이 짙다.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핵실험이 미사일 발사보다 효과적이다. 협박만으로 회담 재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해 몸값을 더 높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북한이 회담 재개에 집착하는 것은 김정은 체제의 명운이 걸린 핵·경제 ‘병진(竝進)노선’의 성공을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생산·보유한 핵(과거 핵)을 용인받는 조건으로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 지난 수년 간 북한이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에 매달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제조건을 달지 않으면 융통성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비핵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 자체가 핵 보유를 용인받는 함의가 있고, 이러한 조건에서 재개되는 6자회담은 북한에는 잃을 것이 없는 ‘꽃놀이 패’가 될 것이다.

6자회담에 나와 제재 해제를 챙기고 핵 동결의 대가로 경제·에너지 지원만이라도 받아낼 수 있다면 병진정책의 활로가 열린다. 북한의 요구 조건대로 딜이 성사되지 않으면 이를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고, 핵무기 고도화를 위한 시간을 벌면서 새로운 도발의 빌미를 찾을 수 있으므로 손해 볼 것은 없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계속이 대화 재개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이유는 대화를 거부하고 계속 방치해 두면 북한이 더 위험해진다는 인식을 확산시킬수록 ‘과거 핵’보다 ‘미래 핵’의 값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순진한 핵 과학자에게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준 것도 ‘미래 핵’의 위험성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저지에 전전긍긍하는 대신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정치적 동력을 살리고 결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저지가 아니라 비핵화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막을 수 있다는 착각은 버리는 게 좋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위협을 6자회담 재개 논리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고, 실제 핵실험을 강행하고 나면 이를 6자회담 거부 탓으로 돌리고 가혹한 대북 제재를 막는 데 앞장설 것이다.

북한의 무기 거래 차단을 주된 표적으로 하는 현행 솜방망이 제재로는 북한이 비핵화(非核化)할 이유가 없다. 제재 강화만으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전략적 계산의 공식을 바꿀 수준의 제재로 뒷받침돼야 외교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평화적 비핵화의 가능성을 살릴 수 있다. 지금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제공할 제재 강화의 명분과 기회를 활용할 전략을 세울 때다.

둘째, 포괄적인 고강도 제재가 시행되면 6자회담 재개의 문턱을 낮춰도 무방하다. 북한이 비핵화 공약을 재확인하고 비핵화를 6자회담의 최우선 의제로 다룬다는 조건만 수용한다면 다른 조건은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 특히, 핵·미사일 실험은 안보리 결의를 통해 이미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것이므로 다시 할 때까지 불법 행동을 자제하겠다는 약속은 의미가 없다.

끝으로, 북한이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도 비핵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확인되면 핵 무장한 북한과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대북(對北)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