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아산생명과학연구원의 아산·다나파버암유전체연구센터에서 연구원들이 맞춤형 진료를 위한 암환자의 유전체 특성을 파악하고 있다.(위 사진) 이후 환자의 유전체 특성 등을 바탕으로 진단과 수술, 약물과 방사선 치료 분야 전문가가 한데 모여 환자·보호자와 함께 최적의 치료방식을 정하고 있다.(아래)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최근 온라인 등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의료 정보와 병원 소개가 쏟아지면서 정보의 왜곡 현상이 심각하다. 의료 정보의 홍수 속에서 환자들은 정확한 정보를 구분해내기 어려워 과잉진료에 노출되곤 한다. 이에 따라 문화일보는 국내 의료계를 선도하는 병·의원의 진료 현장을 직접 찾아 객관적인 시각으로 치료하는 모습을 조명하는 ‘메디컬 프런티어 현장을 가다’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의료진이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모습 등을 가감없이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진료 현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5월 초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1층 통합진료실. 4대의 모니터가 놓여진 책상 앞에 4명의 교수들이 앉아 벽면의 자기공명영상(MRI) 화면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최창민 호흡기내과 교수가 사진 환자에 대해 설명했다. “환자는 엑스레이에서 이상이 발견돼 컴퓨터단층(CT) 촬영 후 (서울아산병원으로) 의뢰됐습니다. 뇌 MRI, 양전자단층(PET) 촬영을 했는데 쇄골상부 림프절에 세포흡입검사상 전이된 암으로 나왔습니다.” 오른쪽 끝에 앉아 있던 도경현 영상의학과 교수가 말을 이었다. “다른 병원에서 촬영한 가슴 CT에서는 왼쪽 폐문 림프절에서도 전이 소견이 있었습니다.” 곁에 있던 김동관 흉부외과 교수가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PET 검사상 쇄골상부 림프절에도 전이가 돼 수술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송시열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방사선 치료 가능성을 설명했다. “범위가 국소적이지(좁지) 않아 방사선 치료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환자에 대한 진단이 마무리될 무렵 김 교수가 정리했다. “그러면 다시 가슴 CT를 촬영한 후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 다른 의견 없으시죠? 환자분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잠시 뒤 문이 열리고 80대 노인이 자녀와 함께 들어와 앉았다. 긴장하고 있는 환자에게 최 교수가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환자의 약한 청력을 배려한 듯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졌다. “저희가 환자분의 검사 결과를 보고 치료에 대해 미리 논의를 했습니다.” 도 교수가 말을 이었다. “PET 검사에서 쇄골상부 림프절도 이상 소견이 보여 조직검사를 하셨는데요. 검사 결과 전이된 암으로 나왔습니다.” 김 교수가 덧붙였다. “수술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여기 방사선 치료를 담당하는 교수님도 계시지만, 지금은 방사선 치료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어 송 교수가 설명을 받았다. “암의 범위가 넓어서 방사선 치료도 하기가 곤란합니다.”

긴장한 듯한 환자가 물었다. “수술이 안 된다고 하면 3기, 4기인가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환자 곁에 있던 보호자는 고개를 숙였다.

최 교수는 낮고 조용하게 설명했다. “환자분들께서 보통 수술만이 최선의 치료라고 생각하시는데 수술을 할 수 없다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수술은 어렵지만 다른 치료방법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암치료에 얼마나 잘 반응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항암치료를 견디시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체력을 위해서는 잘 드셔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환자는 다소 진정된 듯 말을 이었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아직도 멍하고 막막하지만 여러 선생님들께서 최선을 다해 주신다고 하니 믿고 한번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료실을 나간 환자는 바로 가슴 CT 촬영을 하고 종양내과에서 약물치료 스케줄을 확정했다. 현재까지 항암치료를 비교적 잘 이겨내고 있다. 간호사는 “환자가 의료진을 믿고,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수록 치료성적이 더 좋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통합진료실을 방문한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진단, 수술, 약물치료, 방사선 치료, 판독 전문 교수를 한번에 만날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의들이 환자가 보는 앞에서 암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방법을 직접 협의한 후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계획을 세운다. 한 명의 환자를 위해 각 분야의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러나 환자는 4명의 전문의 가운데 한 의사에게만 진료비를 지불한다. 김 교수는 “환자의 진료기록만으로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콘퍼런스와 다르다”며 “통합진료는 환자의 상태와 가족들의 의견 등을 직접 확인하면서 결정하고, 모든 의사들이 함께 결정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는 이미 지난 2006년부터 시행해 다른 병원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로 성공한 시스템이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는 최근에는 맞춤형 암 치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맞춤형 암 치료는 환자의 유전체 특성을 먼저 분석하고, 그에 따른 맞춤형 암 치료제를 적용하는 기술이다. 내시경으로 환자의 암 조직을 추출하면, 서울아산병원 인근 아산생명과학연구원 5층에 위치한 아산·다나파버암유전체연구센터로 옮겨진다. 연구원들이 DNA 추출 자동화 장비를 이용해 환자 시료에서 암세포 유전자를 추출하고, 약 1∼2주에 걸쳐 유전체 특성을 파악한다. 여기서 환자의 유전체 특성에 맞는 최적의 항암치료 방법이 나온다.

환자 개인별 암 종양의 특징을 확인하면,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표적 항암치료제 사용이 가능하다. 암세포 성장을 유도하는 신호가 활발하면 이를 끊기 위한 항암제를 쓰고, 암 조직 주변에 혈관이 형성돼 빠르게 전이된다면 혈관의 형성을 막는 표적항암제를 사용한다. 같은 암이라고 체질이 각기 다른 사람에게 모두 같은 항암제를 적용하는 것은 옛날 치료방식이다. 서울아산병원의 ‘맞춤형 암 치료’ 기술은 아직 연구 단계지만 실용화 직전 단계다. 올해에는 폐암, 대장암, 악성 흑색종 환자 550여 명에게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