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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지식인과 동아시아의 선비를 융합한 ‘새로운 학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조동일(국문학) 서울대 명예교수가 유럽의 지식인과 조선의 선비를 비교하고 양쪽의 장점을 합친 ‘새로운 학자’가 문명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13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인 ‘선비, 그 시대성찰과 역할’이라는 학술회의에 앞서 발표문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러한 통합 작업을 동아시아에서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식인은 능력을, 선비는 정신을 각기 소중하게 여겨 우열을 논할 수 없지만 유럽에서는 선비에 대해 알지 못하고 동아시아에는 선비와 지식인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학자’로서의 통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흔히, ‘선비’라고 하면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개한 지사, 혹은 서책에만 몰두하는 창백한 지식인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선비는 500년 동안 조선 사회를 이끌었던 실천적 지식인이다. 조선이 몰락한 후에도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순절하거나, 광복을 위해 독립투쟁에 나선 것도 ‘선비 정신’을 지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리학과 실학의 학적 계승·전환을 넘어 민족사의 창조적 발전에 기여한 지식·지도층인 ‘선비’. 이들의 역사적 성격과 함께 현대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과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이 공동개최하며 조선의 선비상을 정립한 퇴계(이황)의 사상뿐 아니라, 서구 지식인과 동아시아 선비를 비교, ‘새로운 학자상’을 제시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눈길을 끈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설 정순우(한국교육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퇴계의 시대성찰과 선비의식’이라는 발표문에서 “16세기 퇴계의 출현은 기존 선비상에 큰 변화를 몰고 왔으며 이는 조선의 지성사에 나타난 놀라운 각성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퇴계의 전 생애는 ‘내성內聖)’을 추구하고 사랑(仁)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배운 자’의 부도덕성이 만연한 오늘날에 깊은 울림을 준다”며 “그의 선비상은 공부와 수양 행위를 통해 성인(聖人)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딱딱한 도덕군자만이 아니라 감성적이고 정감적인 선비상도 함께 있었다”고 강조한다.

특히, 정 교수는 퇴계가 직접적인 정치참여나 경세적인 개혁보다는 인간 내면에 대한 깊숙한 이해에서 인간의 구원을 찾고자 한 것에 주목했다. 그는 “퇴계는 선비들이 섣부르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세상의 풍파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며 ‘퇴계선생문집’ 16권을 예로 들어, “‘학문이 지극하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처신하기를 너무 높게 하고, 시의도 헤아리지 못하고서 세상을 경륜하는 데 용감한’ 것을 환란의 주범으로 여겼다”고 풀이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이 ‘조선 선비의 유교정치체제’,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가 ‘다산의 시대성찰과 선비의식’, 김시업 실학박물관장이 ‘심산 김창숙의 선비정신과 민족운동’을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