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이 아동 포르노를 보기만 해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손해 배상액은 별도의 재판에서 액수를 산정하도록 했다. 아동 포르노 유통 및 시청 행위에 대해서는 철퇴를 가했지만 손해 배상액에 대해서는 피해 정도에 따라 산정 여지를 남겨놓는 ‘절반의 판결’로 절충을 취했다.

23일 미 연방대법원은 에이미(Amy·가명)라는 25세 여성이 자신의 아동 포르노를 소지해 형사처벌을 받았던 도일 랜덜 패럴린이란 남성을 상대로 제기한 340만 달러(약 35억3770만 원)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관 5대4 의견으로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에이미가 심적 고통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는 만큼 패럴린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피해자가 입은 충격에 대한 배상액은 별도의 민사재판을 통해 산정하라”고 덧붙였다.

‘에이미 사건’으로 불렸던 이번 재판은 아동 포르노 시청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9명의 대법관 중 진보성향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에이미가 제기한 전액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올리언스 연방항소법원도 패럴린은 에이미에게 34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었다.

판결문을 작성한 케네디 대법관 등 5명의 대법관은 “아동 포르노를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패럴린은 에이미에게 배상을 하는 것이 맞다”라면서도 “하지만 에이미가 주장하는 전액이 아닌 피해 정도에 따라 일정액만 지급하면 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과정에서 “에이미에게 피해를 준 것은 내가 아닌 아동 포르노 유통자”라는 패럴린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에이미는 8∼9세에 삼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17세 무렵 당시에 찍혔던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에이미는 아동 포르노 소지 형사 처벌자 중에 자신의 영상을 다운로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대 340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패럴린은 에이미의 영상 두 점을 포함해 280점의 아동 포르노를 소지한 죄로 지난 2009년에 징역 2년의 판결을 받았다. 에이미는 지금까지 소송을 통해 자신의 포르노를 봤던 사람들로부터 175만 달러의 배상을 받았다.

워싱턴=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