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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경희대 교수·국제학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 아시아 4개국 순방의 첫 번째 귀착지인 일본에 도착했다. 이어서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방문한다. 그의 이번 순방은 자신이 선포한 미국의 아시아 중시 또는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다시 한 번 역내 국가들에 확신시키는 게 목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유럽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활용해 크림반도를 차지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미국의 위상과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이런 미국의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우방들마저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나 않을까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다섯 번째 아시아 방문인 이번 순방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러한 우려를 씻어내려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방문국들에 대한 방위공약과 군사 협력을 재확인함으로써 해당국 지도자들과 국민을 안심시키려 할 것이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의 분쟁에서 미국은 이 섬들이 미·일 방위조약의 대상임을 분명히해왔다. 중국과 군사 충돌이 일어나면 미국은 일본의 편에서 일본과 함께 싸우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국의 동아시아 회귀 정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 왜곡’으로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제국주의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부정하는 아베 총리와 일본 우익의 역사인식은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중국의 입장에서는 손쉽게 동아시아 국가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 중국이 일본과의 역사전쟁을 반기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우방인 일본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없고 주변국들과 분란(紛亂)을 일으키는 일본을 옹호하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와 일본 우익들은 이러한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한 최적의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하고 지지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방위비를 늘리고 헌법 해석을 바꾸려는 시도들이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일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먼저, 아베의 역사 도발은 일본 국내 정치용이라는 사실이다. 30년 가까이 지속되는 일본 경제의 침체와 쓰나미, 원전(原電) 사고로 상처받은 일본 국민을 우익 민족주의 구호로 동원해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정치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이 얼마 동안이나 먹혀들지 모르지만 최근 추락하고 있는 아베 정부의 지지도를 보면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다.

다음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며 일본이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란다.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은 시간이 갈수록 일본을 더욱 곤경에 빠뜨릴 게 자명하다. 미국이 일본 우익 편을 들면 미국도 결국 동아시아에서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아베 총리와 우익 정치인들은 지금 자기최면에 빠져 있다. 부상하는 중국을 억제하려면 미국은 반드시 일본이 필요하고,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는 한 자기들의 역사전쟁도 국내외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잘못된 계산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계산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하기 직전 대규모로 야스쿠니 신사(神社)를 참배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일본을 국빈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이 일본 우익의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일본의 심장부에서 그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강력히 부정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