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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과 강우석 감독의 인연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시절부터 이 감독을 존경해온 강 감독은 영화계에 들어온 후 이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고 싶었지만 워낙 쟁쟁한 선배들이 포진하고 있어 엄두를 못냈다. 그러던 중 지난 1988년 강 감독이 데뷔작인 영화 ‘달콤한 신부들’을 내놓았을 때 이 감독이 강 감독을 찾았다. 첫 작품이 흥행이 안돼 의기소침해 있던 강 감독에게 이 감독은 “너는 천재다”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웠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자리에 개그맨 전유성도 함께 있었는데 이 감독은 전유성에게 “야 어떻게 영화가 개그보다 더 웃기냐”라는 말을 던지며 강 감독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 후 이 감독은 영화인들의 모임에 강 감독을 데리고 다니며 “한국영화를 이끌 친구”라고 소개했다. 강 감독은 “중앙극장 옆 골목에서 국수를 먹으며 이 감독님이 ‘두 번째 영화는 나와 같이 하자’고 했는데 내 두 번째 영화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다른 영화사에서 하게 돼 많이 미안했다”며 “하지만 그 후 이 감독님이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제작해줬다. 이 감독님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강 감독이 이 감독을 도왔다. 이 감독의 복귀작인 ‘시선’의 배급을 맡은 강 감독은 “단순히 이 감독님을 도우려고 배급을 맡은 건 아니다”며 “‘시선’을 처음 보고 ‘이 감독님이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 영화를 관객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인터뷰를 하며 “강 감독이 이 영화가 흥행이 잘 안 돼 착잡할 텐데 어떤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강 감독은 “이 영화로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영화를 선택하는 건 관객의 몫”이라며 “이 감독님이 여기저기 다니며 아쉬운 소리 하는 걸 볼 수 없었다. 의리라기보다는 존경하는 선배에 대한 예우”라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 동안 친형제처럼 지내왔지만 강 감독은 이 감독이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강 감독은 “신문에서 인터뷰 기사를 보고 많이 슬펐다”며 “이 감독님이 내 앞에서는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한 적이 없어서 ‘영화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쉬고 싶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또 강의하고 방송에 나가는 게 좋아서 하는 건 줄 알았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요즘도 이 감독님이 전화하면 벌떡 일어나서 받고, 만나면 부둥켜안는다”며 “이 감독님은 우리 영화계를 이끌 ‘거목’이다. 임권택 감독님 혼자 이끌면 너무 외롭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