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나흘 뒤에야 공개된 세월호 교신 기록은 실제 상황이라고는 차마 믿을 수 없는 ‘살인극(殺人劇) 대본’이나 마찬가지다. 세월호의 항로 급선회 시각인 16일 오전 8시48분 이후 11시20분 완전 침몰까지 2시간여, 그 시간이면 500명 채 안되는 승객·승무원 전원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와 해양경찰청 관할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교신 녹취록은 탈출 호기였던 최초 시간대를 그냥 내버리다시피 한 죄과를 거듭 확인시켜준다. 불의의 사고 아니라 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직무 유기와 무책임 그 자체다.

녹취록에 따르면 첫 교신이 이뤄진 시각은 9시7분이었다. 세월호가 해양수산부 관할 제주관제센터에 “배가 넘어간다”고 알린 8시55분으로부터 12분이나 지난 시점이다. 누가 그 긴 12분을 방치했는지, 진도VTS의 첫 교신이 “지금 침몰 중이냐?”는 긴박한 질문이었고 세월호는 ‘침물 중’이라고 즉답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승객·승무원 탈출이 절체절명(節體絶命)의 과제인 것은 상식 이전의 순서지만 세월호는 전혀 딴판으로 ‘불가능’ 타령이었다. 9시14분 ‘승객 탈출이 가능하냐’는 진도VTS 질문에 ‘많이 기울어 불가능하다’고 했는가 하면, ‘방송해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착용토록 하라’고 하자 방송도 불가능하다고 거짓으로 둘러댔다. 9시25분 선장 판단으로 탈출 결정을 내리라는 지시에도 ‘탈출하면 구조할 수 있느냐’던 그 선장 그 선원이 9시37분 탈출하면서 교신은 끝났고, 더 기울어진 선체에서 10시15분 돼서야 대피 첫 방송이 나왔다.

승선하면 선장을 따르는 것은 일단의 유사시 그가 최후미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탈출 최선두를 연출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 ‘바다 사나이’를 욕되게 한 그 선장 그 선원을 탓하기에도 지쳐 해경에 돌려 묻는다. 왜 더 단호하게 ‘승객 전원을 탈출시키고 또 모든 선원을 퇴선시킨 뒤 선장이 다시 보고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는가. 두고두고 한스럽다. 왜 저주(詛呪) 같은 녹취록을 나흘 이상 쉬쉬했는지도 뒤따르는 의문이다.

선박직 대다수는 자신들만 보유한 무전기로 서로 연락하면서 승객들을 제쳐놓고 먼저 탈출에 성공했다. 그게 ‘바다의 도리’를 저버린 구차한 도생(圖生)임을 대한민국은 법의 이름으로 전세계에 다시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