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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영식/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는 25∼26일의 서울 한·미(韓美)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를 제기하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지지해주길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가 역사를 부정하는 아베 정부의 행동을 비판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일본 비판 이상의 기회로 삼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둔 작금의 한·일 관계는 10여 년 전 노무현-고이즈미 시대와 흡사하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1년 4월 취임 이후 5년5개월의 재임 기간에 모두 6차례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 현 의회는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을 가결했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노무현정부의 경계심은 대미(對美) 외교에 영향을 미쳤다. 2005년 3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노 대통령은 80분 접견 시간 중 45분을 일본 문제를 논의하는 데 할애했다. 2006년 6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워싱턴 정상회담에서도 노 대통령은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식민정책에 대한 반성의 부재와 잘못된 역사관을 장시간 비판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권의 도발 행동은 계속됐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는 한·일 관계를 중재할 정치적 자산과 의지가 부족한 상태다. 리비아, 베네수엘라 및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국제 위기관리 능력 부족이 드러났다. 미국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인권외교를 외쳤지만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카터 행정부의 재판(再版)이라는 진단이 힘을 받고 있다. 한편 오바마 행정부는 원래 예정에 없었던 한국을 이번 아시아 순방국에 포함시켰고, 지난 3월 헤이그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아베 정부의 퇴행적 역사 인식과 자극적 행보를 이미 충분히 경고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 관계 개선에 필요한 기본 환경이 갖춰졌다고 보고, 이제는 한국이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고집하지 말고 양국 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박정부는 역사 문제가 단지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일본의 신뢰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올바른 역사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한·일 관계가 진정으로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미국의 미온적인 자세는 결코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미국은 인식하고 보편적 가치와 정의의 차원에서 입장을 분명히 밝혀줄 것을 촉구해야 한다.

한편 박정부는 일본 문제를 제기하되 일본 대비 한국의 비교우위를 설명하는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먼저, 한·미 안보동맹의 확고한 기반을 재확인하고, 한·미 동맹이 미·일 안보동맹과 비교해 동북아 지역안보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 시스템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 둘째,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 등 남북 화해협력과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한국의 노력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 공조와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국 측에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번 회담에서는 최근 한·중 간의 협력 무드가 한국의 중국 경사(傾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한국은 절대로 일본만큼 미국 입장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음모론을 해소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강조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미국의 파트너로서 대한민국의 신뢰도와 위상을 높이는 성공적인 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