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사(私)교육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제정을 주도한 ‘선행(先行)학습 금지법’이 교육 혼란을 더 키울 뿐이라는 사실은 시행령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11일 공포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례법’의 시행령을 9일 입법예고하면서 금지할 선행학습의 유형·범위와 제재 방안 등을 구체화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은커녕 사교육 의존도를 더 높이면서 교육 혼란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9월 12일 시행 전에 모법부터 재고(再考)·폐기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고등학교의 반(班) 배치고사에 중학교 과정 아닌 내용을 출제해선 안된다는 것부터 그렇다. 중학교 과정도 심화·응용학습 단계에서는 고교 과정과 간접적으로 연계되게 마련이다. 반 배치고사 출제도 그 연장선이다. 이를 강제로 막는다는 것은 반(反)교육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2학기 중에 시행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하도록 고교 3학년에 한해 학년 단위로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게 한 것도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고난도인 2학기 과정까지 1학기에 몰아서 가르치라는 것으로, 그런 교육에 효과가 있을 리 없다. 학생들은 사설 학원으로 더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간·기말고사 등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한 학생·학교에 대한 징계와 예산 지원 축소, 대입 논술·면접 등에서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을 출제하는 대학에 대한 입학 정원 최대 10% 감축과 정부 재정 지원사업 참여 1∼3년 금지 등도 반교육적이면서 현실과 거리가 멀기는 마찬가지다. 학생·학부모는 물론 일선 교사들도 벌써부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선행학습 금지가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이긴 하지만, 그 폐해가 뻔히 보이는데도 억지로 밀어붙여 혼란을 더 키워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