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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우리는 열심히 노력했고 노력한 만큼 성장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왔다. 공부를 조금만 더 하면 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노력해서 안 되는 일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서른을 살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말로 다할 수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서른의 어정쩡함을 떨쳐 버리고 마흔의 안정된 삶의 자리로 옮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마흔을 지나 오십에 들어가면서 인생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오십이 지나면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펼쳐질 줄 알았는데 원하는 것들에 대해 좌절할 때가 많아졌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일 자체가 안 될 때가 많다.

한 여성은 마흔을 지나면서 그동안 못했던 공부에 미련이 남아 있었고 공부를 하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인생 2막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출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혹시’와 ‘설마’라는 두려움으로 대학원에 응시해 가까스로 입학하게 됐다. 다른 젊은 학생들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과제도 해냈다. 과제를 제출할 때마다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문제는 졸업을 앞두고 치러진 외국어시험과 종합시험이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한다. 밤을 새워 공부하고 휴가를 내서 준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이렇게 집중적으로 공부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외국어시험은 불합격됐고 종합시험도 일부만 합격했다. 당연히 모든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는 기대는 좌절됐다. 초·중·고 시절에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대학에 다니면서 가끔 장학금을 받아 보기도 했다. 시험을 어렵게 여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살아왔다. 그런데 시험에 떨어진 것이다. 당혹스러웠고 자신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그다음 시험은 더 긴장한 상태에서 준비해 치렀다. 종합시험은 합격했고 외국어시험은 역시 불합격했다.

살아오면서 매 순간 자신있었는데 안 되는 일들이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것들이 문제가 됐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 형편없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책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격려도 해보지만 금세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는 가까스로 합격했다.

시험을 마친 후에 자신을 살펴보니 시험에 떨어졌던 이유는 나이 들어 옛날과 다른 나를 옛날의 나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좌절과 포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면서 예전의 방식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해낼 수 있는 방법들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내가 갖고 있었던 인생 매뉴얼을 이제는 나이에 맞게 리뉴얼(renewal)할 필요가 있다. 젊었을 때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대로 하고,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은 더 잘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된다. 잘 안 되는 일은 지금 형편에 맞게 조절하면 된다.

젊고 패기있을 때처럼 이것저것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꼭 해야 할 일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내가 꼭 하고 싶거나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내가 해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산을 오르는 자가 산을 내려오듯 올라갈 수 없고, 산을 내려가는 자가 산을 오르듯 내려갈 수 없다. 걸음걸이가 달라져야 하듯이 나이 오십이 되면 내게 맞는 인생의 속도를 찾아내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혜다.

옛날과 다른 나와 친숙하면 친숙할수록 나이 때문에 찾아오는 인생의 한계를 즐겁게 풀어가며 살 수 있다.

leeyuesu@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