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근 주요 제과업체들이 과자의 열량을 낮춰 보이기 위해 1회 제공량당 열량 표시를 제멋대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9일 서울 중구 봉래동 롯데마트를 찾은 고객이 과자의 영양성분 표시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요즘엔 과자가 고기나 과일보다도 값이 더 비싼 것 같아 구입을 많이 망설이게 됩니다. 아이들 건강도 생각해 그동안 열량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제품을 구입했다고 자신했는데 제과업체들의 꼼수 표기에 속았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미네요.”

지난 8일 서울 중구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 다양한 과자들이 진열된 코너에서 딸과 함께 제품을 살펴보던 주부 박시은(여·45) 씨에게 “과자 포장에 표기된 열량이 알고 보면 1회 제공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그마저도 전체 내용물의 2분의 1이나 3분의 1 등 제품마다 제각각인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깜짝 놀라며 이같이 답했다.

박 씨는 “상식적으로 양이 별로 많지 않은 봉지과자 등은 뜯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먹기 마련인 데, 일부 양의 열량만을 표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과자가 열량만 높고 영양가는 없는 식품으로 인식되다 보니 제과업체들이 되도록 소비자들에게 자사 제품의 열량이 낮은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나름 자구책을 쓴 것 같다”고 꼬집었다.

평소 저칼로리 에너지바를 즐겨 먹는다는 직장인 이미진(여·28) 씨 역시 같은 질문을 듣고 비슷한 반응을 나타냈다.

이 씨는 “칼로리가 낮다는 생각에 배가 고플 때는 에너지바를 2∼3개씩 먹기도 했는 데 지금 계산해보니 적지 않은 칼로리를 섭취한 것이었다”며 “제과업체들은 매년 제품 가격을 올리는 만큼 소비자들의 건강과 권리보호에도 힘을 써야 한다는 당연한 의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주요 제과업체들이 과자값을 줄줄이 인상하면서 고기·생선·과일 등 신선식품보다 오히려 과자값이 비싸다는 지적마저 나오는 가운데 소비자들에게 오인을 불러일으키는 제품 열량 표시로 인해 소아비만 등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업체들이 되도록 제품의 양을 잘게 쪼개 1회 제공량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열량을 표기하면서 자사 제품이 고열량 저영양 식품으로 분류되는 것을 막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한번에 먹을 수 있도록 포장·판매되는 과자류는 총 내용량을 1회 제공량으로 표기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개별 포장돼 있어 2회 제공량 이상으로 여러 번 나눠 먹을 수 있는 제품은 30g을 기준으로 3분의 2(67%) 이상 2배(200%) 미만의 범위에서 1회 제공량을 표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과자류는 20∼59g 범위에서 1회 제공량을 업체별 혹은 과자 종류별로 각각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뿐더러 표기된 1회 제공량도 실제 소비자들이 섭취하는 양에 비해 지나치게 적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이날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오리온 포카칩(124g)의 경우 통상 뜯으면 한 봉지를 다 먹게 되는 스낵임에도 불구하고 2분의 1봉지(60g) 기준으로 열량이 347㎉라고 표기돼 있었다. 한 봉지를 다 먹게 되면 총 694㎉의 열량을 섭취하게 돼 식약처에서 정한 고열량 저영양 식품 기준인 1회 제공량당 열량 500㎉를 훌쩍 넘는 것이다.

오감자 그라탕(115g)도 2분의 1봉지 기준으로 267㎉로 열량이 표기돼 마찬가지다. 닥터유 99㎉ 라이트바(112g·4개)의 경우엔 제품 이름이 저열량인 듯한 뉘앙스를 풍겼으나 1회 제공량인 1봉지(28g)가 99㎉여서 그 이상을 먹게 될 경우 고열량을 섭취하게 되는 셈이었다.

롯데제과의 명가 원물가득 떡파이(198g)도 1회 제공량(99g·3개)의 열량이 365㎉에 달해 전부 먹을 경우 총 섭취 열량이 730㎉에 달했다. 1회 제공량(26g·2개)이 120㎉인 해태제과 후렌치 파이 딸기(192g)도 방심하고 먹었다간 충분히 비만을 초래할 수 있었다.

특히 이들 과자류는 보통 가격대가 1000원 후반에서 5000원 후반이어서 여러 개 구입할 경우 밥 한끼 가격보다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해태 에이스(840g) 패키지 제품은 8960원에서 35% 할인해 582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같은 마트에서 국산 오징어가 2마리에 5600원, 돼지고기 뒷다리살이 100g당 1100원, 미국산 오렌지가 1봉(8개)에 4900원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가격이다. 실제 다수 고객들이 과자 값이 영양적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다수의 제과업계 관계자들은 “요즘 여성들이나 아이들이 과자를 한꺼번에 많이 섭취하지 않고 적당량을 나눠 먹는 트렌드에 맞춰 1회 제공량을 설정해 열량을 표기한 것”이라며 “과자값이 비싸다는 논란에 대해선 원재료비 외에도 부재료, 영업비용 등 예상보다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 업체로서도 억울한 점이 많다”고 해명했다. 이어 대부분 “1회 제공량과 함께 총열량도 정확하게 표기해 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은 “제과업체들이 사실상 연말연초나 선거 등을 틈타 매년 무리한 기습인상을 단행했던 게 사실”이라며 “1회 제공량당 표시하고 있는 열량도 자사들이 유리하도록 정해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데 앞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차원에서라도 소비자들에게 책임 회피성이 아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소비자들도 영양성분 표시를 꼼꼼히 살펴보고 제품 구입을 결정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며 “소비자단체도 불합리한 표기 관행을 개선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