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연극 ‘무사시’ 의 한 장면과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연극의 본질’을 보여주는 한·일 두 연극연출가의 대결이 펼쳐진다. 일본의 세계적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79)의 연극 ‘무사시’가 21∼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연희단거리패 이윤택(62) 연출의 연극 ‘피의 결혼’은 27일부터 4월 5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두 연극연출가는 각각 공연에서 가장 ‘일본적’이거나 ‘한국적’인 연출 기법을 보여줄 예정이다.

우선, 니나가와 유키오의 ‘무사시’는 작품 자체가 매우 일본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연극의 배경은 에도(江戶) 시기 초기였던 17세기 일본. 당시 전설적인 무사로 이름을 날렸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와 그의 숙명적인 라이벌 사사키 고지로(佐佐木小次郞), 두 검객 간에 벌어진 최후의 진검 승부를 다루고 있다. 연극은 무사시와 고지로가 1612년 4월 후나시마(船島)에서 벌였던 결투에서 시작한다. 그 결투에서 무사시는 당대 최고의 검객으로 꼽혔던 고지로와 맞붙어 승리했고, 고지로는 결국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연극에선 고지로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후나시마 결투 6년 후, 복수의 칼을 갈아왔던 고지로가 어느 외딴곳의 작은 절에서 무사시를 찾아내 다시 최후의 승부를 갖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3일간의 사건을 그리는 것. 여기에 두 검객을 만류하는 주변 사람들이 얽혀들면서 연극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무사도(武士道)와 부처의 가르침, 일본 전통 예능인 노(能)와 교겐(狂言)의 희극적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차용한 극은 풍부한 유머와 해학으로 가득하다. 결국 복수가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는 사슬을 보여주면서 복수의 덧없음을 깨닫게 한다.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은 “일본의 영웅 2명을 통해 민중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며 “즉 두 검객의 대결을 막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하는데, 여기에서 풍자적인 장면 등을 통해 민중의 힘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극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한·일 간에도 서로 용납하지 못할 일들이 많지만 연극을 통해 타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밝혔다. 02-2005-0114

연극 ‘피의 결혼’은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원작을 이윤택 연출이 각색, 대본을 만들었다. 극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결혼식 날 다른 남자와 도주한 신부와 그들을 뒤쫓는 신랑의 이야기다. 이를 통해 죽음과 사랑, 그리고 본능이 지배하는 세계를 시적으로 그려낸다. 무엇보다 ‘피의 결혼’은 플라멩코와 우리 장단의 만남으로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 분위기의 무대로 꾸며진다.

연희단거리패의 연기파 배우 김미숙이 극 중에서 어머니 역을 맡아 며느리가 저지른 사랑의 도피와 아들의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 늙은 여인의 감정을 격정적인 플라멩코로 표현한다. 어찌할 수 없는 비극 속에 놓인 신랑과 신부 역은 이승헌과 김하영이 각각 맡았고, 신부와 함께 도망가는 레오나르 역에는 윤정섭이 캐스팅돼 열연을 펼친다. 공연에서 남도창과 육자배기를 선보이는 김미숙은 이번 공연을 위해 직접 작창까지 맡았다.

이윤택 연출은 “플라멩코와 우리 장단이 얼마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지 보여줄 것”이라며 “말과 소리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육자배기의 특징을 살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제대로 살려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피의 결혼’에서 소리와 춤, 음악이 함께 있는 ‘연희적 재미’를 추구하겠다”면서 “연극 자체가 갖고 있는 축제로서의 본질을 무대에서 펼쳐 보일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연극 ‘피의 결혼’은 명동예술극장 공연에 이어 ‘이베로 아메리카노 페스티벌’에 초청돼 4월 10일부터 열흘간 일정으로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1644-2003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연극 ‘피의 결혼’ 의 한 장면과 연출가 이윤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