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성한 경찰청장이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지난 1년간의 성과와 향후 중점적으로 추진할 치안 정책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등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집회의 자유가 흔들림 없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적인 집회나 시위를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다. 한국은 불법 집회에도 관대하다. 서울 한복판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마비시키고 귀가 찢어질 듯한 확성기 소리를 내도 별 문제 없다. 반면 미국에서는 불법 집회나 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고, 이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신고 장소를 벗어나 시위를 벌이던 연방의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는 29일 취임 1주년을 앞둔 이성한(58) 경찰청장을 인터뷰하기 며칠 전 이 청장이 간담회에서 “국회의원 등 정치인도 시위 현장에서 법질서를 위반할 경우 바로 연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자 곧장 야당 및 진보단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의원은 “엄정한 법 집행만 강조하며 정치인을 연행하겠다는 것은 현직 경찰청장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례나 국제인권기준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진행된 이 청장과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집회 현장에서의 법질서 유지 문제로 시작됐다.

이 청장은 “사실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사회적 반향이 커서 나도 놀랐다”며 “상징적으로 정치인을 거론했지만 국민 누구나 집회·시위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더라도 법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원칙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집회·시위 보장도 중요하지만 인근 영세상인의 매출 감소나 다른 시민들의 교통 이용 불편, 평온권 침해 등 일반 국민이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며 “도로 점거나 집회 소음 등에 대한 현장 조치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은 임기 동안 꼭 실행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도 이 청장은 불법 집회·시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 유지’를 첫손에 꼽았다. 이를 위해 폴리스라인을 법질서 확립의 척도로 인식하고 이를 침범하는 행위는 현장 검거 등 엄정대응하며 도로를 무단 점거하거나 경찰관을 폭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사법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그는 “집회 현장에서 법질서가 무시되다보니 일상 생활에서도 경찰뿐 아니라 소방관 등이 꼭 필요한 공무 집행을 하다 폭행을 당하거나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며 “합법적이고 자유로운 집회·시위를 통해 정당하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틀을 잡아놓고 싶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해 약 1년간 경찰청장으로서 책무를 수행하는 동안 특히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를 비롯해 각종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 치안 유지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겪었다고 회고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12월 당시 파업중인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지도부가 은신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중구 정동의 민노총 사무실에 대한 경찰병력 투입을 결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당시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진입하는 것은 경찰 지도부로서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정이었다”며 “민노총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적지 않은 후유증도 당연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이 청장은 강제 진입은 어려울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민노총 사무실에 경찰병력을 투입했다. 그는 “노동운동 보장이나 민노총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제가 더 분명해 부득이하게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며 “무엇보다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가 공개된 장소에서 불법 파업을 지도하고 공공연하게 언론 인터뷰까지 하는 것을 경찰이 ‘먼 산 보듯이’ 묵과할 수는 없었다”고 결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직후 성폭력과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 척결’을 국정 핵심 과제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 1년간 4대 사회악 척결에 전 방위적으로 경찰력을 투입한 결과 성폭력 재범률, 학교폭력 피해경험률, 가정폭력 재범률, 식품안전체감도 등 관련 분야의 안전지수가 상당히 개선됐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국민 체감안전도(경찰청 주관)는 상반기 대비 2.1점 상승하는 데 그치는 등 국민들의 기대 수준에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이 청장은 “경찰이 4대 사회악 척결에 집중하다보니 다른 민생치안에 미흡한 것 아니냐는 일부 비판도 나오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실질적으로는 지난해 살인이나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5대 범죄 발생건수가 전년 대비 2.9% 감소하는 등 다른 치안 분야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4대 사회악의 경우 초기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학교 내 경찰의 치안 활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전에는 집안일로만 여겨지던 가정폭력 해결에 경찰이 기여하는 등 차츰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앞으로는 노인과 아동 관련 치안 활동에도 집중해 국민생활 전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임기 5년간 경찰 1만8800명과 해경 1200명 등 모두 2만 명의 경찰 증원을 추진한다. 현재 10만 명에 달하는 경찰관 수가 12만 명으로 급격히 늘어날 경우 조직 비대화와 관료화에 대한 우려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청장은 “전국의 경찰 지구대나 파출소가 2000개가량 되는데 한 곳당 경찰 인원을 1∼2명씩 늘리고 경찰서에 나눠주는 식으로 나눠먹기식 인력 배분을 하다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경찰관을 증원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며 “학교전담경찰관, 성범죄전담팀, 아동안전보호인력 등 시급한 민생치안 분야에 최우선적, 집중적으로 경찰을 배치하고 인력 증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현장 치안시스템 개편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력 증원과 함께 경찰 숙원 사업의 하나인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 묻자 이 청장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정부의 국정과제 실행계획에 따르면 현재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합리적 역할 조정 방안 계속 검토’라는 법무부 의견에 따라 진행되고 있어 현 정부 임기 내 해결이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 청장은 “경찰에서 계속 검·경 수사권 문제를 들고 나오면 국민들이 볼 때 부처 간 다툼으로만 비쳐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면서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중립적 논의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올해 국정과제 실행계획에 포함하도록 국무조정실과 법무부에 제안하는 등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 년 전부터 양대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 간에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시급한 문제로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 입장에서 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중요한지 묻자 그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다시 검찰이 조사하는 이중 수사가 불가피하다”며 “물론 중요한 사건은 검찰이 재차 조사할 필요가 있지만 단순 종결이 가능한 사건의 경우 관련 당사자가 수사기관에 2번씩 가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경찰 선에서 종결 처리하고 검찰에 통보하는 식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반도의 급작스러운 정세 변화 가능성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통일대박론’을 내세우면서 통일 이후에 대한 대비가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다. 통일 과정은 물론 통일 이후에도 일정 기간 사회 불안이 가중될 우려가 있고 사회 혼란을 틈타 대규모 난민 발생이나 집회·시위 등 치안 수요의 급증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청장은 “치안 유지를 통한 사회 안정이 통일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통일 과정의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은 물론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보안상 구체적인 대책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경찰은 통일 이후를 대비해 직급별로 새로 뽑아야 할 인원 등 치안 대책에 대한 연구와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발족하는 만큼 경찰도 적극 참여해 통일 이후 치안 대비책의 완결성을 높이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10만 경찰의 수장이라는 경찰청장 자리는 사실 ‘바람 잘 날 없는 자리’다. 각종 사회적 이슈들이 터져나올 때마다 책임을 져야 하고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할 경우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 정치적 외풍을 막고 경찰의 중립성을 지킨다는 취지에서 지난 2003년 경찰청장 임기제가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2년 임기를 모두 채운 사람은 이택순 전 청장뿐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막중한 책임은 경찰청장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이 청장은 “치안 책임자가 되다 보니 항상 긴장된 생활을 하고 부담감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화장실 갈 때든 어디든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고 청장이 된 후 (휴대전화 소지가 힘든)목욕탕은 아예 안 간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이 된 이후 술자리 역시 크게 줄었다. 그는 “꼭 필요한 술자리는 어쩔 수 없이 참석하더라도 다음 날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 2차는 생각도 안한다”며 “좋은 술자리가 있거나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편하게 술 마실 수 없어 좀 섭섭하긴 하다”며 웃었다.

그러나 이내 이 청장은 “이런저런 어려운 점에도 불구하고 제가 구상하는 치안 철학을 직접 경찰 조직에 설파하고 직원들을 그 방향으로 유도해 일정한 성과를 거둘 때 더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며 “취임 이후 줄곧 경찰이 아닌 국민 입장에서 치안 정책을 추진하자는 내용의 ‘눈높이 치안’을 강조해왔는데 조금씩 성과가 쌓여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임기가 끝난 이후 이 청장이 기억되고 싶은 모습 역시 ‘국민에게 다가서는 경찰’이다. 그는 “무엇보다 경찰만을 위한 치안 행정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도록 조금이라도 노력했던 경찰이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결코 쉽지 않은 경찰 공무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는 뭔가’라는 질문에 “제복이 멋있어 보여서”라는 멋쩍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 청장은 “어려서부터 제복 입은 경찰관을 동경했고, 경찰이 되면 법을 집행하면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동경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론 실제로 경찰 생활을 하다 보니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고 때로는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일도 적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질서를 바로잡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치안 환경 조성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경찰 생활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김남석 기자(사회부)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