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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서울대 교수·경영학

2002년에 만들어진 드라마 ‘겨울연가’는 약 2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또 2003년에는 ‘대장금’이 전 세계 91개국에 수출됐다. 최근 화두가 된 ‘별에서 온 그대’ 역시 중국에서 치맥(치킨+맥주)과 한국 라면 파동을 일으켰다. 일부 국가에서는 한류(韓流) 콘텐츠 시청률이 90%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경이적이다.

그러나 한국이 제작하는 콘텐츠의 수를 보면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른다. 현재 우리는 연평균 100편이 이상의 드라마와 20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한다.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진 약 1000편에 가까운 한국 드라마 중에서 겨우 3편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셈이다.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 만든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은 1%가 안된다는 말이다.

한류 콘텐츠의 지속적인 성공 가능성에 대한 외국의 시각은 더욱 부정적이다. 특히 2012년에 9개국의 36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0% 정도가 수년 안에 한류가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류 콘텐츠의 유사성, 창의적 소재의 부족, 출생 비밀과 불륜(不倫)처럼 식상한 소재에 결말마저 똑같기 때문이다.

한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수많은 콘텐츠를 양산하고, 막연히 세계적인 성공을 기대하는 자세와 비과학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는 한류 콘텐츠의 공통적인 특성들은 해당 국가에서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매우 창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창의적인 한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범국가 차원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가장 먼저, 정부가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한 창조의 주역이 돼야 한다. 정부는 콘텐츠 분야의 민간 기업이 쉽게 할 수 없는 창조 역량을 생산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가 지금처럼 콘텐츠 제작 비용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면, 콘텐츠의 숫자는 증가하겠지만, 산업 전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장기적으로 활용 가능한 창조적 역량을 갖추는 데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첨단 콘텐츠 제작 기술이다. 이런 역량은 중소 제작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투자를 요구한다.

정부 차원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창조 역량 및 콘텐츠 제작 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 국가는 초기 투자에 필요한 자본만 부담하고, 연구소는 축적한 창조 역량과 콘텐츠 제조 기술을 민간에 유상 대여 또는 실물투자 형태로 제공해 민간 기업과 공동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해당 콘텐츠가 성공하면, 거기에서 마련된 자금을 새로운 투자 재원으로 사용하는 선수환 협업 구조를 창조해야 한다. 방위산업체 대체근무나 병역 대체근무 기회처럼 콘텐츠 산업으로 우수한 인력을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 제작 기업과 유통 기업 간에 바람직한 상생(相生)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윤 분배를 위한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즉, 한류 콘텐츠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보완 자산들(complementary assets)을 지속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민간 기업들은 콘텐츠 제작에 성패를 좌우하는 우수 인력들에게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제작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들이 받는 경제적 보상은 아직도 부족한 수준이다.

끝으로, 민간 기업들은 해외 고객에 대한 고객 지향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 일례로 아프리카에서 ‘대장금’을 시청한 사람들이 화면 속 한자 자막 때문에 ‘대장금’을 중국 드라마라고 착각한다고 한다. 해외 시장을 고려하는 콘텐츠의 경우에는 적어도 해당국의 언어로 만든 자막 서비스 같은 고객 서비스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