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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유럽인 니체 / 데이비드 크렐 외 지음,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소심한 시대, 서양지성사에서 드물게 대담한 통찰과 자유를 얘기했던 니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니체는 기독교와 정신적 천박함, 세기의 질병인 인종주의와 거리를 두면서 유럽이 높은 문화창조를 위해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갈파했다. 니체에게 유럽이란 문화 창조의 힘을 모으는 지평을 뜻한다.

니체는 미래 유럽인의 선취를 나폴레옹, 괴테, 베토벤, 스탕달, 하인리히 하이네, 쇼펜하우어, 노년기 이전의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찾고 있다. 니체는 그의 책 ‘반 시대적 고찰’에서 계량화의 위험성과 속물적 세계관을 비판했다. 그의 말은 요즘 말로 돌직구 스타일이다. 니체는 이 책에서 “도표를 좋아하는 친구들” 혹은 “미래 없이 살고 싶고 현재의 문턱 위에 편안히 발을 뻗고 있는 건달”의 안이한 태도를 신랄하게 비꼬았다. 또한 니체는 1886년 말과 1887년 초에 남긴 유고에서 “현대를 드러내는 가장 보편적인 기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존엄성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며 인간의 존엄성 상실에 대해 개탄했다.

니체를 다룬 독특한 인문학 책 두 권이 나왔다. 데이비드 크렐이 쓴 ‘좋은 유럽인 니체’가 니체의 사상이 탄생한 넓은 공간과 풍경을 쫓은 책이라면 고병권의 ‘언더그라운드 니체’는 니체의 사유를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면서 탐색한 책이다. 장소성이라는 날줄과 수직 갱도로 내려가는 듯한 깊이라는 씨줄을 엮어내면 근사한 니체의 모습이 드러날 것 같다.



◆‘좋은 유럽인 니체’= 니체가 여행하고, 머물던 집필장소를 빠짐없이 쫓아가 찍고 기록한 저자들의 끈기는 어지간한 니체 연구자들도 혀를 내두른다. 니체가 교수직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한 10년은 그가 유랑하는 철학자로 지냈던 시기다. 여름은 스위스 엥가딘의 산에서, 겨울은 지중해에서 보냈다. 책에 따르면 영원회귀 사상의 고향이 스위스 엥가딘의 질스마리아 산속이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중심 사상인 영원회귀를 질스마리아 가운데서도 실바플라나 호수 남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와 연결시켰다. 책은 20세기 초에 촬영된 이 호숫가에 있는 ‘차라투스트라 바위’ 사진을 곁들였다. 하지만 니체 삶의 분수령을 이루는 역작인 ‘차라투스트라’의 1부는 이탈리아 리비에라 바닷가 앞에 있는 작고 저렴한 호텔에서 썼다. 청빈한 삶을 살았던 셈이다. 이 책의 2부는 니스 동쪽에 있는 이즈의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썼다. 사진작가 도널드 L 베이츠는 니체자료보관소에서 골라내 수백 컷의 사진을 실어 방랑자 니체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니체가 남긴 무수히 많은 기록, 저작, 편지, 일기, 사진 등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 때문에 마치 유럽에 있는 ‘니체 박물관’을 순례하는 듯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거닐면서 바라보던 산길과 호수, 숲, 바닷가, 도시의 보도들은 아름답다.

니체는 내적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신경증 때문에 아파하는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철학적 탐구를 멈추지 않고 자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사물을 편협하게 바라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봤다. 니체가 말한 좋은 유럽인이란 말은 유럽인들이 평소에도 즐겨 쓰는 표현이다. 니체는 유럽인과 자연 모두를 사랑했던 것 같다. 산꼭대기의 눈에서 순수하고 엄격한 사상을, 바다에서는 글의 리듬감과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을 찾았다. 하지만 바다나 높은 산에서도 니체가 희구한 것은 고독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의 필요성이었다고 한다.



◆‘언더그라운드 니체’= 철학자 고병권은 아포리즘으로 이뤄진 니체의 ‘서광’을 한 문장씩 해체한 뒤 재구성했다. 니체는 책을 쓰던 당시 상황에 대해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경외되고 심지어는 숭배되기까지 했던 모든 것과 결별했다”며 ‘서광’ 집필 작업을 “화약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전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상의 금맥을 캐내기 위한 내면 탐구에 몰입했다. 니체는 철학적 광부였다. “뚫고 들어가고, 파내며, 밑에 들어가서 뒤집는 사람”이라는 것. 노년에 자신의 신전을 건설하고자 하는 명예욕과 피로감으로 가득 찬 철학자와 대비되는 위대한 철학자의 형상을 ‘서광’의 끝 부분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고병권의 해석이다.

“니체는 사상가 등급을 ‘피상적인 사상가’ ‘심오한 사상가’ ‘철저한 사상가’ 그리고 ‘사랑스러운 지하인들’로 나누었다. (‘서광’이라는) 아포리즘을 서문에 나온 ‘지하의 인간’과 연결해서 읽을 경우 우리는 저 바닥까지 내려간 사상가보다 더 깊은, 아니 깊이 자체를 전복한 계보학자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34쪽)

‘서광’에서 니체는 심리학자의 외피를 입고 있었다. 고병권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 뒤에 숨겨진 심리적 책략, 꿈에 대한 분석, 자아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충동에 대한 분석 등 프로이트의 작업을 전취한 것처럼 보이는 여러 구절을 만날 수 있다. 니체 철학이 진화론이나 유전학의 외양을 띠고 나타날 때도 있다는 것. 니체는 도덕적 신비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문헌학자와 같은 철저함과 과학적 사고로 무장했던 셈이다. ‘언더그라운드 니체’에 따르면 니체는 성직자,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 등의 관조적 삶이나 종교에 대해서도 수치스러운 기원을 가차없이 폭로한다. 저자는 “이들의 관조적 삶은 곧바로 행동이 불가능해진 시대, 힘이 약해진 시대에 어떤 모호함 뒤로 숨는 하나의 기술이었다”고 꼬집는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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