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24)의 ‘도둑 맞은 금(金)’으로 불거진 피겨스케이팅의 ‘익명 채점’(secret judging), 불공정한 심판진 구성 등의 문제가 개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가 오는 6월에 열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총회에서 이 같은 피겨 규칙(룰) 개정을 안건으로 제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피겨의 인기는 시들 수밖에 없고, ISU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개정 가능성이 낮지 않아 보인다.

이탈리아 출신의 피겨 국제심판이자 전 ISU 기술위원장인 소니아 비안체티 가르바토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미국피겨협회와 그리스 등을 중심으로 저지(심판)들의 채점표가 실명을 적지 않고 익명으로 공개되는 ‘익명 채점’을 폐지하려는 안을 오는 6월 ISU 총회에 제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올림픽에 한 달 앞서 열렸던 유럽선수권대회에서부터 “러시아에 점수 퍼주기 현상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며 이같이 공개했다.

가르바토는 “피겨 유럽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더 좋은 연기를 했던 카롤리나 코스트너(27·이탈리아)에게 71.02점의 예술점수(PCS)를 줬던 심판들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러시아)와 율리야 리프니츠카야(16·러시아)에게 각각 69.60점과 68.00점을 주며 차이가 거의 없게 만들었다”며 남자 싱글에서도 역시 러시아 선수에 유리한 판정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가르바토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각 저지들이 얼마나 많은 점수들을 퍼주는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지금 같은 제도에선 점수가 나와봐야 조작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만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USA투데이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이 끝난 다음날인 지난 22일 “익명 채점으로 인해 부정행위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미국피겨협회는 이번 여름 열리는 ISU 총회에서 익명 채점 폐지를 안건으로 다뤄줄 것을 ISU에 요구했다”고 전했다.

심판진의 공정한 구성도 규칙개정에 포함될지 관심사다. 앞서 미국 USA투데이 등은 소치올림픽 피겨 심판으로 참여한 알라 셰코프체바가 발렌틴 피셰프 러시아피겨연맹 회장의 부인인 점 등을 들어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심판진이 구성됐다고 지적했다. 셰코프체바 외에 테크니컬 컨트롤러로 들어간 알렉산드르 라케르니크 러시아빙상연맹 부회장까지 러시아인이 심판진에 2명이나 포함됐다. 이 신문은 러시아인 2명 외에도 배점을 하는 9명의 심판진에 우크라이나 출신 유리 발코프, 에스토니아 출신 잔나 쿨리크, 슬로바키아의 아드리아나 도만스카 등 러시아 입김을 받는 동구권 출신이 여럿 포함됐다고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일본 언론 ‘더 페이지’는 24일 ‘피겨의 룰 변화가 가능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폭적인 규칙 개정이 이루어질 것은 틀림없다”며 “올해 6월 열리는 ISU 총회에서, 다음 시즌(2014∼2015)에 앞서 개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겨의 규칙은 매년 소폭으로 조정되고, 2년마다 큰 폭의 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준호·박준우 기자 jh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