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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사라진 세상 / 로널드 드워킨 지음, 김성훈 옮김 / 블루엘리펀트

인류는 새로운 ‘종교 전쟁’을 맞이하고 있다. 서로 다른 종교들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신을 믿는 자와 신을 믿지 않는 자들 사이의 전쟁이다. 실례로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의 공립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기도 시간을 따로 배정해도 되는지, 크리스마스에 공공 광장에 예수 모형을 설치해도 되는지, 혹은 학교나 거리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해야 맞는지 등으로 크고 작은 분열을 겪고 있다. 이 모든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1931∼2013)은 ‘윤리적 독립성’을 기준으로 해결 고리를 찾는다. 책은 미국, 영국, 프랑스 공립학교의 기도 시간을 예로 든다. 영국의 공립학교에서는 매일 기독교의 기도 시간을 학교생활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프랑스는 정반대다. 어떠한 종교적 시간도 단호하게 금지한다. 미국은 기나긴 논쟁 끝에 소위 ‘침묵의 시간’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기도나 명상 혹은 휴식을 할 수 있게 놔두는 것. 그는 “침묵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유신론적 종교를 믿는 학생과 무신론적 종교를 믿는 학생 그리고 명상할 거리가 없다고 믿는 학생 모두에게 중립적으로 다가간다”고 말한다.

드워킨 교수의 유작인 이 책은 2011년 겨울 스위스 베른대에서의 강연을 정리한 것으로, 종교의 본질이 ‘신’이 아닌 그보다 더욱 심오한 ‘신념’에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예로 든 ‘윤리적 독립성’은 이 ‘심오한 신념’으로 바꿔써도 무방해 보인다. 드워킨 교수에 따르면 이를 통해 무신론자와 유신론자 간에 ‘접점’이 생겨난다.

책은 이 ‘접점’을 설명하기 위해 종교, 신, 과학, 물리학, 숭고함, 아름다움, 헌법, 신비, 죽음 등 해석과 정의가 분분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우주에 대한 두 가지 믿음(물리법칙의 지배 vs 초자연적 존재의 지배)을 분명하게 구분지은 것과 달리 드워킨은 ‘종교적 무신론’이라는 다소 놀랍고 역설적으로 보이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칭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유신론자들이 종교적이라 생각하는 것만큼 심오한 신념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무척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인격적인’ 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우리보다 더 위대한’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말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종교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결코 유신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드워킨과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종교는 신보다 더 깊고 심오하고 독특하며 포괄적인 세계관이다. 그들 삶에 생명을 창조하고, 아들의 형상으로 지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는 신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어떤 인생을 사는가의 문제는 객관적으로 중요했다. 따라서 그들은 끊임없이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때 드워킨이 주장하는 ‘종교적 태도’가 나타난다. 즉, 신에 대한 책무가 없는 ‘종교적 무신론자’들도 유신론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동등한 ‘신념’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 양자 간의 ‘접점’, 즉 새로운 ‘종교 전쟁’을 막을 실마리가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