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립극단 예술감독직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11월 손진책 초대 예술감독이 퇴임한 후 3개월 가까이 예술감독이 임명되지 않자 연극계 안팎에서 국립극단의 수장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는 것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지난 3일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신임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데에도 연극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현장 경험이 없는 연극평론가가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이처럼 비판적인 여론을 감안한 듯 김 신임감독의 기자간담회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열렸습니다. 신임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지 불과 2주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것이지요. 여타 예술관련 단체장의 경우에 비춰보더라도 무척 빠른 시일에 기자들을 만난 겁니다. 사실, 업무파악을 하기에도 2주일이란 시간은 빠듯할 테니까요.

김 신임감독으로선 연극계 안팎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을 겁니다. 앞으로 예술감독의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둘러싼 비판적인 시각을 돌려놓을 필요가 있었을 테니까요. 김 신임감독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펼칠 여러 가지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원을 두지 않고 있는 현행 국립극단 배우진 운영을 크게 바꿔놓겠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석좌배우로 3년형 계약 5명 ▲중추배우로 2년형 계약 10명 ▲기반배우로 1년형 계약 15명 등 모두 30명가량의 계약직 단원을 구성하겠다는 겁니다. 국립극단이 지금처럼 단원을 두지 않게 된 데는 연유가 있습니다. 지난 2010년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할 때 기존의 단원제를 폐지했던 것이지요. 예전 국립극장 전속단체로 국립극단이 운영될 당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단원제였습니다.

“예술적 열망은커녕 오로지 ‘철밥통’으로 일관한다”는 것이 예전 국립극단 소속 단원들에 대한 비판의 가장 큰 부분이었습니다. 그 같은 비판에 앞장선 사람 중의 한 명이 바로 김 신임감독이기도 했지요. 다시 말해 단원제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 신임감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이가 비록 계약직이라고 하더라도 단원제를 운영해야겠다고 계획을 밝힌 것은 무엇보다 국립극단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작품을 기획할 때마다 민간 극단에서 연출과 단원을 ‘꿔 오는’ 형태로선 국립극단의 정체성을 확립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인 겁니다. 이와 관련, 김 신임감독은 지난 3년간 국립극단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국립극단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는 다소 미약했다”며 “국립극단의 중심이 되는 배우그룹이 있어야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단원제 도입은 또한 국립극단 레퍼토리 작품 선정과도 연관됩니다. 김 신임감독은 “자문위원단을 구성, 향후 3년간 무대에 올릴 레퍼토리 작품을 선정하겠다”며 “작품 선정은 무엇보다 고전의 현대화에 주안점을 두고, 창작 역시 고전화할 수 있는 작품과 세계적 흐름에 걸맞은 연극성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국립극단이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