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논설위원

감동(感動)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도 바꾼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감동을 받으면 더 성숙해지고, 새로운 꿈을 꾸기도 한다. 정직·땀·성실·도전 등의 가치를 새삼 깨달으며 시야도 더 넓히게 된다. 누구나 그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주인공으로 존경받기를 바라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고 있는 제22회 동계올림픽의 영웅들은 ‘감동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어떤 분야에서든 감동과 존경의 주역이기 위해 가져야 할 정신과 자세를 생생하게 일깨워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끝나기 일쑤인 이들의 경기를 TV로 보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많은 주요 배경도 ‘감동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자국 선수의 감동적인 경기를 기다리는 것은 모든 국가가 다르지 않다. 일부 선수에 대해선 더러 국적과 상관없이 감동을 기다린다. 20∼21일 경기에서 올림픽 2연패(連覇) 가능성이 크지만, 아직 경기하지 않은 ‘피겨 여왕’ 김연아(24)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올림픽이라서 더 열심히 한다는 마음이 아니라 평소처럼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말 한마디까지 세계가 경구(警句)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우승 당시부터 그가 ‘감동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빙속 여제(氷速女帝)’ 이상화(25) 선수도 마찬가지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종목에서 그의 올림픽 2연패 위업을 지켜보기 위해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절반이 자정 넘은 시간까지 TV 앞에 앉아 있었던 이유, 세계 각국에서 그의 경기 결과와 함께 평소 생활에도 큰 관심을 보인 배경 등이 달리 있지 않다. 스케이팅이 ‘국민 스포츠’ 중 하나인 네덜란드에서도 “선수가 되고 싶은 여자 아이들의 교본(敎本)”이라는 이상화가 ‘스케이팅 교과서’를 넘어 ‘감동 교과서’이기도 한 것은 연속 금메달을 뒷받침한 진취적인 도전 정신, 철저한 자기 관리, 불굴의 의지, 각고(刻苦)의 노력 등이 남달랐다는 사실이다.

이상화는 승부 근성부터 두드러진다. 이는 그가 “인생은 한 방이다”라고 한 말에서도 드러난다. 성공을 위해 도전 정신을 가지고 확고한 목표를 세워야 하며, 그 ‘한 방’을 위해 죽을 힘까지 다 쏟아야 한다는 취지다. 경기 직전일에도 투혼을 다잡기 위한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한 치의 실수도 냉정하게 반영되는 것, 그것이 시합이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또다시 나에게 찾아온 결전의 날. 반갑다 또 도전할게. 잘해보자! 기운 내. 할 수 있어.’ 같은 종목 동메달리스트인 외국 선수가 “이상화를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가 빙판 위에서 실수하는 것뿐”이라고 말했을 정도의 실력을 쌓기까지 그가 쏟은 노력이 어땠는지는 경기를 1주일 앞두고 페이스북에 올린 다짐 ‘이겨내리라! 지금까지 견뎌온 역경과 한계를’ 등에서도 알 수 있다.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이 유력했으나 동메달에 그친 박승희(22) 선수도 ‘감동 교과서’다. 결선 레이스 선두를 달리던 그는 뒤쫓아오던 영국 선수에게 떠밀려 넘어졌으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달렸고, 마음이 급한 나머지 또 넘어졌지만 또 털고 일어서 끝까지 달렸다. 경기 직후 흘린 눈물을 곧이어 환한 웃음으로 바꿔 관중의 격려에 화답하고, “넘어진 것도 실력”이라며 굳이 다른 선수의 반칙을 탓하지 않은 의연함 등이 세계를 감동시켰다.

꼭 메달을 따야만 감동의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이규혁(36) 선수가 이를 뚜렷하게 입증한다. 세계선수권대회 5회 우승과 세계 신기록 2회 작성의 출중한 실력을 가졌지만, 6회에 걸쳐 출전한 올림픽에선 끝내 메달을 따지 못한 채 은퇴한 그는 마지막 레이스였던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출전 선수 40명 중 최고령이었다. 하지만 “참가에만 의의를 두는 선수가 되기는 싫다”며 이를 악물고 몸을 만들었고, 끝까지 혼신(渾身)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결국 21위에 그치고도 “홀가분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경기를 마친 뒤 탈진해 누운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각국의 세계적인 선수들이 “존경한다”는 인사를 전하는 장면 등은 메달과 무관하게 감동적이었다. 이렇듯 소치 영웅들이 행동으로 써서 보여주는 ‘감동 교과서’를 미래세대뿐 아니라 기성세대도 너나없이 삶의 귀감(龜鑑)으로 삼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