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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세대, 두개의 뇌로 만들 미래 / 미셸 세르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기성세대의 권위를 부정하기 일쑤이고 국가나 집단에 대한 충성이나 희생의 가치에는 코웃음 치면서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스마트폰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해 시답잖은 글을 올리거나, 인터넷으로 연예인들의 뉴스나 퍼 나르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 역사를 통틀어 젊은이들은 늘 기성세대들에게 ‘걱정스러운 존재’였지만, 1990년대에 무렵 태어나 인터넷과 ‘늘 연결돼 있는’ 요즘 젊은이들은 특히나 기성세대들에게 탄식의 대상이다. 매사에 이기적이고 주의가 산만하며, 가상의 커뮤니티에는 몰두하지만 실제 인간관계는 서툴고, 책무보다는 욕망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이들을 기성세대들이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가 쓴 이 책은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찬사와 격려,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로 채워져 있다. 책 제목의 ‘엄지세대’란 짐작하다시피 스마트폰을 들고서 엄지손가락으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자판을 치는 요즘 젊은 세대를 말한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역사상 첫번째 세대인 이들 엄지세대들은 기상 후 5분 안에 온라인에 접속하며 웹을 서핑하며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다닌다. 모든 메시지와 정보는 웹으로 대체되고 지식은 물체화돼서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정보로 인터넷을 떠다니는 시대를 살아온 이들은 부모세대와는 다른 머리를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한다.

엄지세대들이 무한한 정보로 채워진 인터넷을 ‘또 하나의 뇌로’ 활용하면서 가상과 실제를 넘나들며 세상의 변화를 재빨리 감지하고 수집한 정보를 분해하거나 짜깁기해 새롭게 탄생시킨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구반대편의 이들과도 연대하거나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를 퍼 나르고 전달하며 공유한다. 이전 세대들에게는 강력한 소속집단이던 지역도, 국가도, 인종도 이들에게는 무의미하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관계를 맺고 소속감에 똘똘 뭉쳐 살아왔던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이런 엄지세대의 출현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사고의 토대부터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식, 타인과의 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엄지세대의 모든 것이 기성세대와는 완전하게 단절돼있는 신세대를…. 책의 저자는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에 생겨난 엄청난 균열과 간극은 유럽의 르네상스시대의 문화적 단절 못지않다고 설명한다.

이런 단절과 균열로 우리사회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전의 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세대가 등장했음에도 어른들은 이미 폐기돼야 마땅한 사회제도와 틀 속에 젊은이들을 가두려 하면서, 기존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려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게 먹혀들리 없다. 삶의 방식이 변화하면서 국가나 민족에 대한 소속감이 흐려진 세대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과 고귀한 희생이 이해될리 없다는 얘기다.

교육뿐만 아니다. 저자는 엄지세대가 성장하면서 사회의 권력구조도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정보의 의학적 지식이 의사의 전유물이 아니고 정보가 더이상 언론기관에만 집중되지 않으면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피라미드의 정점을 차지한 채 권력을 장악하는 지금의 약육강식의 사회구조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이렇게 기존의 제도와 권력이 무너지고 나면 과연 어떤 세상이 올까. 저자는 엄지세대이 이뤄내는 세상은 지금처럼 딱딱하게 경직되지 않고 부드럽고 활력있는, 창의적인 대안이 솟구쳐나오는 세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저자는 탑과 같은 수직의 형태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다양한 속성들이 수평적으로 펼쳐지는 공동체를 이룰 것이지만, 원한다면 언제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래 세대들에 대한 탐구와 분석이란 주제도 흥미로울뿐더러, 다양한 비유로 쉽게 주제를 간명하게 풀어나간 저자의 필력도 훌륭하다. 책이 시집 정도의 크기로 작은데다 160여 쪽이라 부담스럽지도 않다. 여기다가 문장을 다듬고 낯선 용어나 사건이 등장할 때마다 괄호 안에 정성껏 풀어준 번역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사족으로 한 줄만 덧붙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생활하는 엄지세대들에 대한 폭넓은 옹호와 열정적인 지지로 가득한 책의 저자가 ‘여든두 살’이라는 것이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