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문화부장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경제학, 역사학 저술이나 통계자료보다 더 많은 지식을 제공한다. 이 소설은 역사, 문화, 사회의 내면을 저장한 압축파일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근대를 휩쓴 새로운 장르였다면, 현대에는 영상매체들이 신진 장르로 활약하고 있다. 가공할 만한 캐릭터의 매력과 이미지의 빠른 전개로 청년층을 흡입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과감한 주제를 선명하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데 매우 큰 힘을 발휘한다.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열린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우리 만화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지지않는 꽃’ 20점을 출품해 커다란 호응을 일으켰다. 지구촌 대중을 대상으로 역사적 이슈를 확산할 수 있는 매체로서, 만화는 유력했다.

사실, 만화·애니메이션을 내세워 자국의 문화와 자국적 역사관을 알리려는 세계 주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다. 만화는 미디어 내셔널리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 미화로 논란을 일으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가 최근 애니메이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애니상을 수상했다. 주변국을 폄하하는 일본만화의 기세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반 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험악한 내용도 마구 쏟아내는 게 ‘혐한(嫌韓) 만화’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부문의 글로벌 헤게모니 경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앙굴렘 페스티벌을 계기로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만화산업 육성의 방향이다. 국제만화페스티벌이 열린 앙굴렘은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440㎞나 떨어진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다. 이 작은 도시에서 수십만 명의 관람객을 모은다. 앙굴렘이 세계적 만화도시로 부상한 배경에는 든든한 정부 지원이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앙굴렘에 만화박물관과 도서관을 세우고 미디어테크, 디지털 영상센터 기능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왔다. 한국도 전국적인 만화 분야의 정보 문화 인프라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만화·애니메이션의 보존과 발굴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도시가 부천시다. 만화부문에서 세계적 작가를 육성하고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면서 과학적 진흥 노력을 꾀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재능 있는 만화가에게 숙식시설까지 제공하며 만화가를 키워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고작 만화”라며 장르 자체를 우습게 보는 인식과 “만화 콘텐츠는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공짜 의식을 털어내 버려야 한다.

201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동시에 제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는다. 내년 가을에 열리는 세계 최대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 역사 만화를 전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독일은 일본과 비슷한 전범 국가지만 어두운 과거를 사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일본의 역사왜곡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면, 그들의 반향은 기대할 만하다. 한류 문화 콘텐츠를 입체적으로 활용해봄직하다. 한국이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만큼 정보기술(IT)과 접목된 웹툰 기술도 적극 발전시키는 등 다양한 지혜를 종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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