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준(伊� = 혤ㅗ畸뮌見� 유동용·1937∼2011)이 평생 모신 스승은 재일교포 화가 곽인식(1919∼1988)이었다. 건축가는 작업의 근원으로 조선자기, 민화, 불상 같은 조선의 전통문화와 더불어 곽 화백의 그림을 지목했다(작은 타원형이 밥알처럼 중첩되고 확산되며 동양적 신비감을 자아내는 곽 화백의 그림은 갤러리현대의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전에도 선보인다). 생전에 도쿄(東京) 작업실의 벽면에 곽 화백의 종이그림을 걸어두고 늘 가까이했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존재의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하던 건축가는 첨단 재료와 기술의 건축을 추구하던 일본 경제활황기의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과 달랐다. 그는 오히려 1970년 전후 일본 미술가를 주도했던 모노하(物派) 예술가들과 교우하며 건축에서 “사물 본래의 입장에 서서 자연을 한없이 동화시키는” 건축을 추구했다. 일본 모노하에 큰 영향을 미친 곽인식, 이우환 화백과 가깝게 지내며 건축에서 돌·나무·철판·점토 등 대상을 ‘있는 그대로 두는’ 모노하의 정신을 건축에서 추구하고, 자연 소재를 즐겨 사용했다.

평생 한국 국적을 유지했던 건축가. 그는 한때 오사카(大阪) 유일의 공항이던 ‘이타미(伊丹)’와 절친했던 음악인 길옥윤의 끝자(윤·潤)를 조합한 이름, ‘이타미준(伊� = �)’으로 불렸다.

한국서 이타미준 건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는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제주에 작품을 여럿 남겼다. 제주 비오토피아 단지에 1998년 핀크스클럽하우스를 시작으로 2001년 포도호텔을 비롯해 2006년 돌, 물, 바람 미술관 및 2007년 두손 미술관 그리고 2009년 방주교회를 세웠다. 야트막한 땅에 반쯤 파묻힌 듯한 클럽하우스, 시간대에 따라 빛이 돌과 나무 사이로 스며들고 반사되는 미술관, 물 위에 떠 있는 배 같은 교회 등 이타미준의 작품과 더불어 제주는 건축의 명소가 됐다. 그러나 사유지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들 명작은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돼 있어 아쉬움이 컸다.

제주프로젝트를 포함해 이타미준의 40여 년 건축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전이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오는 7월 27일까지 열리는 ‘이타미준: 바람의 조형’전에서 건축의 스케치, 모형, 사진뿐 아니라 영상 ‘또 다른 물, 바람, 돌’(감독 정다운)도 상영한다.

유족이 미술관에 기증한 건축 자료를 통해 1970∼2000년대 작품과 더불어 회화·서예 등 이타미준의 또 다른 작업도 접할 수 있다. 딸인 건축가 유이화 씨가 생생하게 재현한 고인의 도쿄 작업실 책상 위에 작고 사흘 전 남긴 스케치가 놓여 있다. 나무와 검은 돌을 즐겨 사용했던 건축가의 작품세계를 현장이 아닌 미술관에서 접하는 건축전은 건축애호가가 아니라도 흥미롭다.

사진이나 책으로 만날 뿐 실물을 직접 대하기 힘들던 유명 건축가와 명작을 이제 현대미술관에서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과 차별화해 과천관을 건축 상설전시장으로 활용키로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첫 기획전이 이타미준 건축전이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