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의 고객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에 대한 획기적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2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주민등록번호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한번 유출되면 2차, 3차 피해로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며 “외국 사례를 참고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없는지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 지적대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예외없이 출생 신고와 동시에 부여받아 평생 사용하게 되는 주민등록번호가 공적·사적 영역을 막론하고 무분별하게 수집·관리되고 있어서 오·남용(誤濫用)을 막을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생년월일·성별·출생지 등 주요 개인정보가 담긴 주민등록번호는 다른 개인정보나 금융정보 등과 결합돼 범죄 악용 개연성이 크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까지 관행적으로 수집·관리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안전행정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전체 공공기관의 88.1%, 민간기관·업체의 61.5%가 수집·관리한다. 이를 허용하는 현행 법령만 해도 866개에 이른다.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인터넷 사이트 중에 92.5%는 불필요한 수집인 것으로 드러난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민간 분야도 오·남용 소지를 넓히고 있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동번이인(同番異人)이 존재할 수 없게 한 주민등록번호 제도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만큼 순(順)기능 또한 큰 것임은 물론이다. 1968년 북한의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기도한 ‘1·21 사건’을 계기로 간첩 식별 등 안보 강화를 위해, 생년월일을 제외한 개인 정보를 12자리 숫자로 나타내기 시작한 뒤 1973년부터 현행 13자리 숫자로 변경됐다. 도입 45년을 넘긴 이 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 확립과 범인 검거율, 행정 서비스의 효율성 제고 등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더 심각해지도록 방치할 순 없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개인을 식별할 수 있으면서도 상세한 정보는 나타내지 않는 번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이유부터 직시해야 한다. 그나마도 국가 안보, 소득세 징수, 벌금 부과 등 사용 목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배경도 마찬가지다.